방문단 일행은 마침내 목적지 우수리스크(Уссурийск)에 도착했습니다. 도시 초입부터 깨끗하고 잘 정리된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날 앞서 방문했던 작은 마을, 크라스키노와 바라바쉬, 라즈돌노예에 비하면 약 20만명 인구의 우수리스크는 강릉만한 큰 도시인 것이지요.
우수리스크는 블라디보스톡(인구 60만명)에 이어 연해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그런데 고려인 인구는 우수리스크(약 1만5천명)가 블라디보스톡(약 1만명)보다 더 많습니다. 즉, 고려인들에게는 연해주 최대도시 블라디보스톡보다 우수리스크가 더 고향 같은 곳입니다.
이는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연해주는 원래 말갈의 땅이었으나 고구려가 이곳을 지배했습니다. 618년 고구려가 망한 후에는 그 유민이 698년 이곳에 발해를 건국했는데, 발해 15부의 하나인 솔빈부(率賓府)가 지금의 우수리스크 지역으로 추정됩니다.
926년 발해가 멸망한 뒤에는 12세기 여진족의 금(金) 왕조와 17세기 만주족의 청(淸) 왕조가 이어서 이곳을 지배했습니다. 청나라는 이곳을 주루호톤(만주어:Juru hoton, 한어:双城子, 쌍둥이 도시라는 뜻) 또는 푸르단호톤(Furdan hoton, 한어:富爾丹城)으로 불렸습니다.
1860년 러시아가 연해주를 할양받은 후 니콜라이 1세는 1866년 이곳에 군대를 파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라 니콜리스크예(Никольское)라고 불렀습니다. 다롄-하르빈 철도와 수이펀허-만저우리 철도를 포함하는 동청철도(東清鉄道)와 연결하기 위해 이곳에 철도가 개통되자, 니콜리스크예는 교통의 요지가 되었고, 1898년 니콜리스크-우수리스크(Никольск-Уссурийский)라는 이름의 시로 승격됐습니다.
1935년, 스탈린의 측근 클리멘트 보로실로프(Климе́нт Вороши́лов, 1881-1969)의 이름을 따서 보로실로프 시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스탈린 사후 보로실로프도 실각하면서 1957년부터 지금의 이름인 우수리스크 시로 개칭되었습니다.
우수리스크는 고구려인과 발해인이 살았던 곳이고, 1860년대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농사를 지었을 뿐 아니라, 1900년대부터 의병과 독립군이 활약하던 곳이었습니다.
우수리스크의 라즈돌나야(Раздольная=옛이름 수이펀허綏芬河) 강변에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유허비가 있고, 고려인 지도자 최재형 선생이 활동하던 중 1920년 일본군에게 살해된 곳이어서, 그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주택은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또 우수리스크에는 의병대장 류인석, 독립군 홍범도 장군과 함께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도 세워져 있습니다.
우수리스크는 20세기 초 연해주 고려인의 중심지였고, 1922년과 1927년 두 차례에 걸쳐 고려인 자치구를 청원할 때 자치구의 중심도시로 상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37년의 강제이주는 약 80년 동안 3세대의 고려인이 일궈온 삶의 기반을 뿌리 채 뽑아버렸습니다. 고려인이 떠난 마을은 폐허가 되거나 백인 혹은 다른 인종의 러시아인들이 들어와 살았습니다. 우수리스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독립국가연합이 결성되자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했던 고려인들이 연해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오늘날 연해주의 고려인의 인구는 다시 5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우수리스크는 다시 한 번 고려인 삶과 활동의 중심지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1930년대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2010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6만명의 우수리스크 인구 중에서 고려인은 약 5천명으로 전체의 3%를 약간 상회할 뿐입니다. 전체인구의 3분의1에 이르렀던 과거에 비하면 아직 그 10분의 1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우수리스크의 고려인들도 꾸준히 성장, 발전하고 있습니다. 정착촌 우정마을이 조성되고, 연해주 이주 140주년을 맞아 민족문화센터도 건립됐습니다. 또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도 설립되었는데, 이는 러시아 연방정부가 공인한 유일한 고려인 민족학교입니다.
이번 방문단의 목적은 우수리스크 고려인 동포들이 강제이주 이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역동적인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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