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순혁명 학생지도자를 한국에 초청해 달라는 무스타인 빌라 자히르씨의 요청을 받고, 이고은 선생과 저는 이를 다각도로 검토했습니다. 이메일을 받은 826일부터 약 한달 간 국제 언론에 보도된 몬순 혁명을 조사했고, 방글라데시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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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ladesh July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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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927<615합창단> 일일주점에 참가해 <무용신> 실행위원회의를 열었고, 10명의 실행위원 중에서 6명이 참석한 가운데, 내년의 여러 사업과 함께 올해 마지막 사업으로 방글라데시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에는 몬순혁명이 광주518항쟁처럼 큰 희생을 치른 민주화 운동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고려됐습니다. 반정부 시위 중에 약 650명이 경찰의 발포로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조사가 진행되면서 10월말 현재 약 15백명의 사망자가 파악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시력을 상실하거나 지체부자유를 야기할만큼 중상을 입은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3만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광주항쟁 희생자가 194명이라고 발표했으나 이를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유족들은 희생자가 2천여명에 이른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광주항쟁은 제대로 조사되지 않은 채 수십년의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몬순혁명에서는 학살을 자행한 하시나 정권이 무너졌기 때문에 희생자 조사가 바로 시작됐고, 희생자의 실상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자히르씨는 방글라데시의 몬순혁명을 한국의 광주항쟁에 연결시킵니다. 그는 2012년 여름 광주518아카데미에 참석한 이래 광주항쟁과 대학살, 그리고 이어지는 저항과 민주화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후에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연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논문에서 아시아 민주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이 때문에 방글라데시로 귀국한 후 청년 학생들의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창시하게 됐습니다. 

 

 

학위를 받은 후 자히르씨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여러 차례 광주를 방문했고, 2023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의해 국제 민주화 홍보대사로 임명되었습니다. 몬순혁명의 성공으로 구성된 임시과도정부에서 자히르씨는 헌법개혁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자히르씨는 광주항쟁의 희생자들이 어떻게 파악되고 기록되었는지, 유가족이 어떤 예우를 받았는지, 발포 책임자들이 어떻게 처벌되었는지에 대한 자문을 얻고 싶어했습니다. 자히르씨가 첫 이메일에서 요청한 4개 항목 중에서 3개항이 광주항쟁의 경험을 배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는 한국 단체들에게 (1) 몬순혁명을 기록하는 방법과 (2) 혁명 중에 발생한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체계적인 방법에 대해 자문해 주기를 원했고, (3) 518기념관을 모델로 몬순혁명 민주화투쟁 기념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도록 요청했습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피스모모><몬순클럽>이 방문단의 광주 일정을 마련한 것도 이 같은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몬순혁명 방문단은 23일의 광주 일정을 통해 518국립묘지를 찾아 참배했고, 518재단을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고, 518기록관을 방문해 광주항쟁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그리고 그같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조사했습니다.

 

 

방문단은 또 광주시민들과 만나 간담회를 열었고, 몬순혁명의 배경과 경과와 결과가 광주항쟁의 그것과 맥락과 궤적를 같이하는 민주화 운동임을 거듭 밝혔습니다.

 

 

자히르씨가 몬순혁명을 광주항쟁과 동일시하곤 했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1980년의 광주항쟁은 전두환 쿠데타 세력에 의해 진압됐지만, 2024년의 몬순혁명은 큰 희생에도 불구하고 하시나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성공했습니다. 말하자면, 몬순혁명은 광주혁명(1980)에서 촛불혁명(2016)에 이르는 한국 민주화운동을 한데 합친 것과 같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방글라데시에는 아직 군부와 전정권의 잔존세력의 위협이 남아 있습니다. 임시과도정부가 이같은 난관을 극복하고 혁명을 평화적으로 안착시킨다면, 이는 방글라데시 민주화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방글라데시인들이 몬순혁명을 2의 독립이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jc,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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