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12日大阪到着した20203関西空港れて帰国してから2年半ぶりのことだ飛行機着陸したのが5時頃だったがターミナルをくなったそれで今回大阪がくれた最初じは突拍子もなく、「ここはむんだなだった緯度なく経度数度違うだけなのに太陽じられるのが不思議だった

 

 

2年半前日本たのは舞踊靴えるためだった李仁珩·インヒョン先生一緒だった同年31神戸朝鮮学校卒業式直後李仁珩先生舞踊部練習室まった学生たちに韓国同胞たちがめての舞踊靴えた

 

鄭世和(チョン·セファ)先生がそばで伝達手伝ってくれて写真った李仁珩先生神戸城高校舞踊部のリ·ジュソン指導教師舞踊靴写真以後2年半続いた舞踊靴キャンペーンの象徴となった

 

 

今回訪日一人だった李仁珩先生家族日程のため同行できなかったイム·サンテク先輩同行することになっていたが航空便都合2日後到着することになっていた

 

日本往来めたのは朝鮮舞踊家崔承喜(チェ·スンヒ)先生日本公演調査するためだった20185安海龍(アン·ヘリョン)先生恵那クヌギさんと一緒った東京調査めてだったその後約2年間日本くの都市図書館記録保管所崔承喜先生朝鮮舞踊公演調査したえてみると北海道から沖縄まで42都市訪問した

 

そんな201910月初めに偶然機会京都朝鮮学校のチョ·ミョンホ校長先生とユン·ギョンスク舞踊教員中央芸術競演大會紹介された11月初めに大阪朝鮮学校かれた舞踊競演大會参観朝鮮舞踊する関心急速拡大した1930年代崔承喜先生めた朝鮮舞踊80年余りがぎた日本全域公演されているのが不思議だった

 

 

舞踊競演大會映像撮影担当された鄭世和先生ったのがには幸運だった鄭世和先生から在日朝鮮学校在日同胞する事情具体的くことができ崔承喜先生するをすることができた

 

神戸朝高のための舞踊靴キャンペーンをめたのも鄭世和先生とのいをじてまったものだったそのたちはおいにえなくても2年半6のキャンペーンをじて11百人在日朝鮮学校舞踊部学生たちに舞踊靴えることができた

 

往来途絶えたのはコロナ防疫のためだった韓日間貿易紛争外交的対立一役買った往来はなかったがたちは在日朝鮮学校舞踊神キャンペーンと宝塚朝鮮人追悼碑プロジェクトそして沿海州高麗人舞踊衣装後援事業推進した仕事結果すほど玄海灘こう一緒いてくださった鄭世和先生信頼つようになった

 

 

関西空港から南海線って大阪市内進入大阪駅環状線えて天満駅かい期待ちていた鄭世和先生天満駅えにくとらせてきたためだはすっかりくなり駅周辺飲食店街かりがともった天満駅入口たちは再会した2年半ぶりだったが不慣れではなかったたちはおいに両手をつないでしくりながらいのつめたいできてしいです

 

ホテルのチェックインをえてたちはまた天満駅前夕食にし間懐かしがっていたビールを注文することができた約束場所到着すでに食堂調査をしておいた鄭世和先生めでたちはてんぷら専門店いた

 

 

鄭世和先生はあれこれ説明しながらぷらと串焼きを相次いで注文したがその時何べたのかよくせないただがつまずいた乘用車いてられた鄭世和先生電車時間のためにれなければならないまでわしたがわしたのかも曖昧

 

しかしその日天満駅鄭世和先生った場面よくれたスチール写真のようにまれたいできてしいです本当しいです(jc,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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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2일 오사카에 도착했다. 20203월 간사이공항을 떠나 귀국한 지 약 2년 반 만이었다. 비행기가 착륙한 것이 5시경이었는데 터미널을 빠져 나오는 동안 날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그래서 이번에 오사카가 준 첫 느낌은 생뚱맞게도, ‘여기는 해가 빨리 지는구나였다. 위도 차이 없이 경도가 몇 도 다를 뿐인데 빨리 지는 해가 느껴지는 게 신기했다.

 

 

2년 반 전에 일본에 왔던 것은 무용신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이인형 선생과 함께였다. 그해 31일 고베조선학교의 졸업식 직후, 이인형 선생이 무용부 연습실에 둥그렇게 모여선 학생들에게 한국 동포들이 보내는 첫 무용신을 전달했다.

 

정세화 선생께서 옆에서 전달을 도왔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이인형 선생이 고베조고 무용부의 리주선 지도교사에게 무용신을 전달하는 사진은 이후 2년 반 동안 계속된 무용신 캠페인의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 방일은 혼자였다. 이인형 선생은 가족 일정 때문에 동행할 수 없었다. 임상택 선배님이 동행하시기로 하셨지만 항공편 사정으로 이틀 후에 도착하시게 되어 있었다.

 

내가 일본을 왕래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일본공연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20185월 안해룡 선생과 에나 크누기씨와 함께 했던 도쿄 조사가 처음이었다. 이후 약 2년 동안 일본 여러 도시의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찾아 최승희 선생의 조선무용 공연을 조사했다. 세어 보니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42개 도시를 방문했다.

 

그러던 중 201910월초 우연한 기회에 교토 조선학교의 조명호 교장선생과 윤경숙 무용교원을 만났고, 중앙예술경연대회를 소개받았다. 나는 11월초 오사카 조선학교에서 열린 무용경연대회를 참관했고, 조선무용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확대됐다. 1930년대에 최승희 선생이 시작한 조선무용이 8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전역에서 공연되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무용경연대회에서 영상 촬영을 담당하신 정세화 선생을 만난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정세화 선생으로부터 재일조선학교와 재일동포들에 대한 사정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었고, 나는 최승희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릴 수 있었다.

 

고베 조고를 위한 무용신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정세화 선생과의 의논을 통해서 시작된 것이었다. 이후 우리는 서로 만나지 못하면서도 2년 반 동안 6차례의 캠페인을 통해 11백 명의 재일 조선학교 무용부 학생들에게 무용신을 전달할 수 있었다.

 

왕래가 끊어진 것은 코로나 방역 때문이었다. 한일간 교역 분쟁과 외교적 대립도 한 몫을 했다. 왕래는 없었지만 우리는 <재일조선학교 무용신> 캠페인과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프로젝트, 그리고 <연해주 고려인 동포 무용의상 후원> 사업을 추진했다. 일이 결과를 내어갈수록 현해탄 건너편에서 함께 일해 주신 정세화 선생에게 깊은 신뢰를 갖게 되었다.

 

 

간사이공항에서 난카이선을 타고 오사카 시내에 진입, 오사카역에서 순환선으로 갈아타고 텐마역으로 향하면서 나는 기대에 찼다. 정세화 선생께서 텐마역에서 마중하겠다고 알려 오셨기 때문이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서 역 주변 먹자골목에 불이 환하게 밝혀진 텐마역 입구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3년반 만이었는데 전혀 낯설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두 손을 붙잡고 마구 흔들면서 서로 얼굴을 한참씩 바라보았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텐마역전으로 나와서 저녁식사를 함께 했고, 나는 오래 그리워하던 일본식 생맥주, 나마비루를 주문할 수 있었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이미 식당 조사를 해 놓으신 정세화 선생의 권유로 우리는 튀김 전문집에 자리를 잡았다.

 

 

정세화 선생은 이것저것 설명하시면서 튀김과 꼬치를 연달아 주문하셨지만, 그때 뭘 먹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냥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차를 두고 오신 정세화 선생의 전철 시간 때문에 헤어져야 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그날 텐마역에서 정세화 선생과 만났던 장면은 잘 찍힌 스틸 사진처럼 내 마음에 새겨졌다. 반갑습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jc, 2022/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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