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우선 4건의 신문기사를 읽었습니다. 사고를 보도하는 기사는 보통 피해자의 신상을 어느정도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범죄나 사고 피해자의 신상 보도를 자제하는 편이지만, 1백년 전의 신문들은 그런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나이와 주소까지도 보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각 기사마다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가 조금씩 달랐습니다. <고베신문>조선 경상남도 출신 윤길문(尹吉文, 21), () 윤일선(尹日善, 25), 오이근(吳伊根, 25), 여시선(余時善, 19), 오이목(吳伊目)의 다섯명이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피해를 입었고, 윤길문은 즉사, 오이근은 병원으로 이송중에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베유신일보>조선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 출신의 조선인 윤길문(21), 윤일선(25), 김시선(金時善19) 4이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고, 이중 윤길문과 오이근씨가 사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오사카아사히신문>조선인 토공 3이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를 당했고 토공 윤길문일(尹吉文一, 21), 오이근(吳伊根, 25)의 두명은사망했고 토공의 우두머리 이일선(伊日善, 25)는 중상... 양시선(揚時善, 19)은 안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아사히신문 도쿄판>토공 이길문(伊吉文, 21) 오이근(吳伊根, 25)의 두명은 약 20칸을 날아가 신체가 산산조각이 나는 참사를 당했고, “토공의 우두머리 이일선(伊日善, 25)은 크게 중상을 입고 졸도했으며, 인근 오두막에서 식사준비 중이던 이일선의 아내 양시춘(揚時春, 19)은 얼굴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고베신문><고베유신일보>가 명시한 피해자의 수는 5명과 4명으로 조금 달랐지만, 보도한 피해자 이름은 거의 일치했습니다. 다만 여성 피해자의 이름만 여시선과 김시선으로 달랐습니다. 아마도 한자 여()자와 김()자가 비슷해서 생긴 오류로 생각됩니다. ()씨를 김()씨로 잘못 표기한 것은 글자의 모양이 서로 비슷한 데다가, 조선인들의 성으로 김씨가 더 보편적이었기 때문에 착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오사카판과 도쿄판 <아사히신문>의 기사는 <고베신문><고베유신일보>이 밝힌 윤길문과 윤일선의 이름을 이()길문과 이()일선으로 보도했는데, 이것도 역시 한자 윤()자와 이()자가 비슷하게 보여서 생긴 잘못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한국에는 이()씨 성이 없으므로, 고베의 신문들의 보도가 정확할 것으로 보이며, 정홍영 선생도 고베 신문들의 기록을 따랐습니다. 따라서 정홍영 선생님의 선례를 따라서 사망자의 이름을 윤길문(尹吉文)과 오이근(吳伊根)으로 단정하고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윤일선씨의 아내 여시선(余時善)씨를 양시선(揚時善, 오사카판), 양시춘(揚時春, 도쿄판) 등으로 서로 달리 보도했지만, 이 역시 여시선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선씨를 양()시선씨로 잘못 표기한 것은 양()자의 일본어 음독이 (よう)’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여시선()을 양시춘()으로 표기한 것은 두 글자가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의 일본식 음독이 슌(しゆん으로 한국식 음독 선()과 비슷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4개 신문의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 희생자의 수와 이름 표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조사연구의 목적상 그런 차이는 제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사망자가 2명이며 그 이름이 윤길문(尹吉文)씨와 오이근(吳伊根)씨로 일치하므로 이들의 연고지를 찾기만 하면 됩니다.

 

<아사히신문>은 이 두 사람의 조선 연고지를 보도하지 않았지만 <고베신문>은 사망자들이 조선 경상남도 출신이라고 보도했고 <고베유신일보>는 더 구체적으로 조선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 출신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이 정도의 정보라면 90년 전 희생자의 연고지를 조사하기 위한 매우 구체적인 출발점이 되어 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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