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보았듯이 이시이무용단원들 중 무용수는 거의 가족이었다. 그런데 이시이 가족이 아닌 무용수가 있었다. 마츠우라 다비토(松浦旅人, 1901-1927)였다. <일본가극배우연감(1921)>에 그의 나이가 20세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그는 1901년생으로 1905년생인 코나미보다 4년, 1911년생인 에이코와 최승희보다는 10년 연상이었다.
마츠우라 다비토는 오사카의 이와마 사쿠라코(岩間櫻子) 무용단에서 무용을 시작했는데, “윤기 있는 눈”을 가진 미남으로 간사이 지역에서 인기가 높았던 그는 무용뿐 아니라 연극과 문학에도 탁월해서 그가 지은 단가는 큰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그 같은 높은 인기에 힘입어 그의 연기 모습을 담은 그림엽서가 발행되기도 했다.
마츠우라 다비토는 1920년 여름 도쿄로 옮겨와 <도쿄오페라좌>에 가입하면서 그 좌장이던 이시이 바쿠와 인연을 맺었다. <도쿄오페라좌>는 1920년 여름부터 홋카이도, 도호쿠, 호쿠리쿠 순회공연을 단행했고, 1921년 봄에는 간사이와 산요, 큐슈 지역에서 공연했는데, 마츠우라 다비토는 여기에 열성적으로 참여했고, 이시이 바쿠가 그의 역량을 눈여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흥행보다 예술성을 선택한 이시이 바쿠는 1921년 5월 <도쿄오페라좌>를 해산했고, 1922년 12월부터 1924년 4월까지 유럽과 미주 순회공연을 단행했다. 마츠우라 다비토는 <도쿄오페라좌> 해산 이후 간사이로 돌아가 여러 활동관에서 연기하다가 1921년 11월경부터는 도쿄의 와세다극장(早稲田劇場)에서 여흥을 연기하고 있었다.
구미 순회공연에서 돌아온 이시이 바쿠가 마츠우라 다비토를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마츠우라 다비토는 1926년 2월 시작된 이시이무용단의 만주와 조선 순회공연에 참여했다. 그는 경성공연 첫날 이시이 바쿠와 함께 “무용시 <명암(明闇)>”을 듀엣으로 발표했고, 셋째 날은 아동무용 <오늘밤은(今晩は)>을 독무로 공연했다.
그러나 마츠우라 다비토는 박명했다. 1928년 2월에 발행된 <이시이바쿠 팜플렛 제2집>에는 그가 “오사카 송죽좌에서 공연하던 중 폐부수막염으로 쓰러져 사망했다”는 부고가 실렸다. 그는 30세도 안 된 나이에 무용가로서의 꿈을 마음껏 피워보기 전에 병사한 것이다.
대구 공연의 이시이무용단의 무용수는 모두 4명이었고 내부 매니저 이시이 야에코와 피아니스트 호시나 테루오(保科輝雄)를 합치면 모두 6명이었다. 그런데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생애(2006)>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조선 순회공연에 참가한 무용단원은 모두 16명이라고 했다.
“1926년 봄부터 지방 공연에 주력했습니다. 이시이 바쿠 무용단 일행은 16명으로 우선 중국에 건너가 만주일일신문의 후원으로 대련(大連) 공회당에서 첫 공연을 한 후 뤼순(旅順), 봉천(奉天), 장춘(長春), 지린(吉林) 등을 2개월 동안 순회 공연했습니다. 당시 만주에는 일본인이 다수 이주해 있어서 어느 공연이나 대만원의 성황이었습니다. 그 후 조선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언론보도에 이름이 언급된 무용단원은 6명에 불과했고 신입단원 최승희를 합쳐도 7명이었다. 다른 9명의 단원들은 누구였을까? 우선 바이얼린 주자가 있었다. 최승희는 경성공회당 분장실을 방문했을 때 바이올린 반주소리를 들었다고 회상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음향과 조명 스탭이 있었다. 극장에 따라 달라지는 음향을 조정할 전문가는 1명으로 충분했겠지만, 조명에는 적어도 4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 이시이무용단의 공연에는 좌우와 중앙의 조명이 있었고 거기에 스포트라이트가 하나 더 있었다. 따라서 적어도 4명의 조명기사가 있어야 했고, 그중의 한명이 조명 책임자였을 것이다.
그밖에 무용단 내부를 관장하던 이시이 야에코와는 별도로 순회공연의 대외업무를 관장하던 매니저가 있었다. 그는 최승희의 입단을 위해 최승희 부친을 설득하고 도항증을 신속하게 발급받기 위해 마츠오카 경성일보 사장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이상의 계산을 통해 16명 중에서 13명의 단원들의 역할은 파악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3명은 어떤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었는지 아직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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