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단이 참가한 첫 행사는 513일 다카라즈카 역 앞에서 열린 조선학교의 고교 무상화 포함을 요구하는 가두서명 집회였습니다.

 

토요일 오전인데도 20여명의 활동가들이 모였고, “고교 무상화에 조선학교를 배제한 것은 차별이라고 호소하면서 시민들에게 전단을 나눠주었고, 동조하는 시민들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다카라즈카에는 역이 두 개입니다. 사철 한큐(阪急)의 다카라즈카 역과 제이알(JR) 다카라즈카 역이지요. 둘 다 기차 통행량이 많은 큰 역입니다. 제이알(JR=Japan Railways)은 원래 국철이었지만 19876개로 쪼개지면서 민영화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제이알도 사철입니다.

 

다카라즈카에는 좋은 온천이 많았고 1877년 최초로 상업화된 다카라즈카 온천이 개업하면서 일본 전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일찍부터 철도가 가설된 것은 물론입니다.

 

제이알 다카라즈카선의 전신인 국철 후쿠치야마선(아마가사키-다카라즈카-후쿠치야마 구간)이 가설된 것이 1891, 한큐 다카라즈카 본선(우메다-다카라즈카)이 가설된 것이 1910년입니다.

 

 

한큐 전철회사는 더 많은 관광객을 더 오래 유치하기 위해 1914년 소녀가극단을 창설, 쇼 비즈니스를 시작했습니다. 일본 최초의 걸그룹이었던 것인데, 다카라즈카 소녀가극단의 전용 대극장을 세우고 정기적으로 초호화 공연을 제공했으므로 관광객은 더욱 많아졌습니다. 온천과 쇼 비즈니스로 호텔업이 번성했습니다.

 

다카라즈카는 또 만화작가 데즈카 오사무의 활동 덕분에 일본 만화와 만화영화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카라즈카를 일본 만화의 메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데즈카 오사무 기념관은 역사가 오랜 온천, 가극단의 대극장과 함께 다카라즈카의 3대 명물로 꼽힙니다.

 

 

3대 명물 덕분에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다카라즈카에 몰려듭니다. 다카라즈카는 인구 22만 정도의 소도시이지만 매년 약 120만명의 관광객이 다카라즈카를 찾습니다. 주말과 휴일이면 다카라즈카 역의 인파가 더욱 불어납니다.

 

JR 다카라즈카 역과 한큐 다카라즈카 역은 서로 20미터쯤 떨어져 마주보고 있고, 고가다리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역에서 다른 역으로 건너갈 수 있습니다. 둘 다 큰 종착역이고 기차 통행량이 많기 때문에 주민과 관광객을 가리지 않고 통행인들이 많습니다.

 

 

가두서명 집회는 그 고가다리의 JR역 쪽에서 열렸습니다. 일본어를 모르는 방문단은 가슴에 구호를 걸고 고가다리를 따라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일본인 활동가들은 함께 구호를 외치고, 돌아가면서 확성기로 연설도 하고, 조선학교를 지지하는 노래를 합창하기도 했습니다.

 

이 가두집회에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활동가들이 대부분 일본인이었다는 점입니다. 재일동포, 즉 재일조선인들이 없지 않았지만, 20여명의 참가자 대부분이 일본인 활동가였습니다.

 

 

우리 방문단 6명과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나오신 <팀아이>의 정세화, 구실 선생님도 캠페인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이 집회는 원래 일본인 활동가들이 주최하는 연례 행사였습니다.

 

다카라즈카의 일본인 활동가들은 매년 4월 고교무상화에 조선학교 포함을 요구하는 가두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조선학교를 제외한 고교 무상화 정책이 발표된 20104월부터 시작되어 매년 4월에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는 사정상 조금 늦게 열리게 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 방문단도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 가두서명 캠페인에는 다카라즈카 출신의 일본인 정치인들도 참가했습니다. 효고 현의원 하시모토 나루토시 의원과 다카라즈카 시의원 키타노 사토코 의원이 그들입니다.

 

 

행인들의 반응은 비교적 냉담했습니다. 제 관찰로는 대략 스무 명에 한 명 정도의 행인이 전단지를 받았고, 그중 일부가 설명을 듣고 연판장에 서명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활동가들의 호소를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곤 했습니다. (jc, 2023/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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