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시민들이 근대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결과 192911월에는 경성의 <내선자동차사>와 경쟁할 <경춘자동차사>의 설립허가를 받았고, 12월에는 신설 공회당의 낙성식도 열었다.

 

그에 더해 또 하나의 공연시설 <춘천극장>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춘천 최초의 상설관 <춘천극장>이 언론에 처음 보도된 것은 1929722일의 <조선신문>이었다.

 

지난 17일부터 춘천극장에서 흥행했던 광영단일좌의 연극은 성대하게 끝을 맺었다. 기자는 극장주 아라키 마츠노주(荒木松之十)씨가 일대 분발을 통해 백척간두 일보를 추진, 계획대로 상설관 시설을 완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929년 7월22일 <조선신문>은 춘천극장에서 연극공연이 상연되었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극장은 가설극장이었다.

 

기자가 기사에 개인적 바람을 노골적으로 서술한 것이 이례적이지만, 이 기사를 통해 우리는 당시 춘천에 <춘천극장>이라는 연극상연 극장이 있었지만 상설관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극장주 아라키가 상설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었던 점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춘천 거주 20년째라는 아라키는 <조선신문>의 춘천지국장이자 본정 3정목에 <마츠노야(松乃家)>라는 요리집과 <큐슈(九州)여관>이라는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다. 1924624일의 <조선일보><송내가>의 개업 5주년을 맞아 극장을 가설(假設)하고 연극을 무료 상연했다고 보도했다. ‘가설이란 임시로 설치했다는 말이므로 건물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라키 사장의 가설극장은 1930년 벽두까지 계속되었다. 193015일의 <조선신문>이 아라키의 <가설 춘천극장>11일 저녁에 연극과 영화를 상연해 성황을 이루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1930년 후반에 다른 이름이 등장했다. 926일의 <매일신보>미네마츠 카츠토시(峯松勝利)씨가 혼자서 극장을 세우려고 만반준비를 진행 중이던 바 당국의 허가도 나왔으므로 곧 공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하면서 장소는 송내가(松乃家) 앞 광장이며 공사비는 약 일천칠백원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1930년 9월26일의 <매일신보>는 춘천 최초의 상설관 <춘천극장>이 조만간 건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송내가>의 아라키 사장은 자력으로 <가설 춘천극장>을 상설관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장소가 <가설 춘천극장> 자리 그대로였던 것으로 미루어 아라키 사장이 <가설 춘천극장> 자리에 상설관을 지을 권리를 미네마츠 카츠토시에게 넘긴 것으로 보인다.

 

<상설 춘천극장>이 완공되어 낙성식을 가진 것은 그해 1025일이었다. 극장 건축에 채 한 달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아마도 설계와 자재가 준비된 목조건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춘천극장>의 낙성식은 <부산일보(1029)><조선신문(1030)><동아일보(111)>가 보도했는데, 종합하면 “1125일 낮에 낙성식이 거행되고, 오후3시에 피로연, 오후7시에 첫 영화 <충신장(忠臣藏)>이 상연되었으며, 피로연에는 민관 백수십명과 춘천 주재 기자들이 초대되었고, 수백 명의 관객이 이 상설극장의 첫 영화 <충신장>을 관람했다고 한다.

 

1934년 10월31일의 <조선중앙일보>에 따르면 <춘천극장>은 경영권이 이전되면서 <읍애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상설 춘천극장>의 주인은 이내 바뀌었다. 1932126일의 <조선신문>경성 마츠다(松田)활동사진상회가 221일과 22일에 걸쳐 <춘천극장>에서 각 신문지국과 소방조의 후원으로 첫 흥행을 가져 만원의 성황을 이뤘다고 보도하면서 (=마츠다)가 곧 <춘천극장>을 인수하여 매달 사회봉사의 의미로 참신한 활동사진을 무료 공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마츠다의 <조선극장>3년이 못되어 다시 한 번 주인을 바꿨다. 19341031일의 <조선중앙일보>에 따르면 금번 송죽(松竹)영화 배급소인 경성 덕영(德永)상점이 <춘천극장>을 인수하여 <읍애관(邑愛館)>이라는 상설관(常設館) 허가를 얻어 직영으로 매일 우수한 영화를 상영하기로 되었다고 전했다.

 

아라키가 <조선극장>을 상설관으로 전환하지 못하고 가설극장을 7-8년이나 해야 했던 것, 그리고 마츠다가 약 3년도 안되어 <조선극장>을 도쿠에이에게 매각했던 것은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춘천 시민들이 영화를 신기해하며 좋아하기는 했지만 실질 수요가 많지는 않았던 춘천에서 상설관 경영이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jc, 2021/8/23초고; 2024/2/18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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