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열악한 교통과 협소한 극장, 그리고 낮은 수익성에도 불구하고 최승희가 춘천공연을 단행한 이유에 대해 함광복 기자는 다음과 같은 서술했다.

 

춘천에서는 한 사람의 후원자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은사가 있다면 당시 숙명여고 훈육주임교사이자 화가 춘천(春泉) 이영일(李英一)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월간 太白'19894월호) 이영일은 초대 강원도장관을 지낸 이규완(李圭完)3남이다. 맏형은 각일(覺一), 전일본유도선수권대회를 휩쓴 선길(鮮吉)은 바로 위형이다.

 

마침 이영일의 형 이선길은 조선 유도의 영웅으로 등장하던 무렵이다. 1931년은 아직 '유성(柔聖)'이라고 불리던 때는 아니다. 그러나 일본 무용계의 샛별로 떠오르던 최승희의 명성을 그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최승희도 이선길의 명성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춤과 유도로 일본을 흔든 강원도가 낳은 조선의 영웅이었다. 이규완이 그의 춘천공연을 주선했을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937년 전일본유도선수권대회인 <선사권대회> 우승자들의 단체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 안경쓴 사람이 이선길.

 

춘천에 거주하는 최승희의 후원자로 함광복 기자는 이영일, 이선길 형제와 그의 부친 이규완씨를 지목했다. ‘이영일이 최승희의 후원자였다는 서술은 객관적인 증거가 제시되어 있지 않아 추론에 머물렀지만, 검증해볼 가치가 있다고 느껴졌다. 먼저 함광복 기자의 서술 중에서 사실이 아닌 것은 가려낼 필요가 있었다.

 

이선길(李鮮吉, 1898-1971)이 유도 영웅으로 불렸던 것은 사실이다. 이선길이 조선인을 처음으로 열광시켰던 것은 193211월의 전일본유도선수권대회인 <선사권(選士權)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였다. <동아일보>가 호외를 발행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최승희의 춘천공연 2년 후의 일이었다.

 

193110월에도 이선길은 전조선유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었고, 이것이 그가 주요 대회에서 처음 거둔 높은 성적이었다. 조선총독상이 수여되는 우승은 일본인에게 돌아갔고, 이선길은 오늘날의 국무총리상에 해당하는 정무총감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선길이 정무총감상을 받은 것도 최승희의 춘천 공연 이후 반년이 지난 후였다.

 

 

, 19312월경 이선길이 유도계에서 떠오르는 샛별이었음에 틀림없었고, 신문에는 그의 유도경기 전적이 보도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조선을 열광시킬 상황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선길이 유도인의 자격으로 최승희 무용단을 유치할 수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선길이 조선인의 유도 영웅으로 떠오른 것은 193211월 히비야 음악당에서 열렸던 제3회 선사권(選士權)대회 장년후기(30-37) 부문에서 우승했을 때였다. 이선길은 1934년과 1936년에도 같은 부문에서 준우승했고, 1937년과 1938년에는 성년전기(38-43) 부문에서 연달아 우승했다. 그가 유성이라고 불린 것은 이때였다. 이선길이 선사권 대회 본선에서 5회 입상하는 동안 8개조로 나뉘어 진행되는 예선전이나마 통과한 다른 조선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한편 이선길은 유도 선수뿐 아니라 경찰관 경력으로도 기억될 필요가 있다. 이선길이 직접 경찰업무를 담당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춘천 소재 강원도 경찰국 소속 유도선수였다.

 

 

당시 강원도 경찰에는 조선인이 또 한명 있었다. 최백순(崔白洵, 1897-?)이다. 강릉 출생인 그는 1921년 순사에 임명되었고, 1923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해 경부보로 승진, 1925년까지 강릉경찰서에서 근무했다. 1926년부터 춘천 도경찰국으로 옮겨와 경무와 경부, 보안과 경비업무를 담당하던 중 19289월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 19291월 춘천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가 담당한 사건으로는 19339월 간도공산당사건 재판이 있다.

 

춘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직후, 최백순은 6명의 춘천 유지들과 함께 <춘천자동사운송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경춘가도를 달리는 자동차 운송업에도 뛰어들었다. 당시 <춘천번영회>를 조직해가며 춘천을 발전시키자는 지역 주민들의 염원을 실천에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연배도 같고 강원도 경찰국 근무경험을 공유한 이선길과 최백순은 교분이 있었을 것이다. (jc, 2021/8/25초고; 2024/2/18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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