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는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 추도비를 건립하기 위해 20년의 노력을 기울이신 콘도 도미오 선생님, 그리고 희생자들을 위해 1백년이 넘도록 제사를 지내오신 일본인들과 재일동포들에게 존경심도 솟았다.

 

콘도 선생께서 나에게 희생자들의 한국 내 연고를 찾아달라는 부탁하셨을 때 망설임 없이 승낙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희생자 다섯 분에 대한 연민의 마음과 함께 이분들을 제사하고 추도비까지 세우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희생자 김병순씨의 고향이 강원도 강릉임이 문헌으로 확인되자, 나는 강릉시에 청원을 냈다. 추도비 건립자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해 달라는 청원이었다. 이것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김병순씨를 기억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김병순씨의 희생이 잊히지 않도록 애쓰신 일본인과 재일동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이 청원에 여러 사람이 동참했다. 한국 <팀아이>의 정철훈 선생, 사진작가 안해룡 선생도 참여했고, 김성수기념사업회의 홍진선 이사장, 네트피아의 유선기 사장, 강릉원주대학의 강승호 교수 등, 강릉의 활동가들도 동참했다. 특히 김병순씨의 족보를 찾아내 그의 강릉 연고를 밝히는 단서를 발굴해준 강릉 경주김씨 종친회의 김자정, 김철욱 선생도 청원에 참여하셨고, 일본에서도 효고현의 정세화, 스미애 다이꼬꾸(大黑澄枝) 선생이 함께 해 주셨다.

 

이 청원은 강릉 시의회를 경유해 강릉 시청에 접수되었고 청원내용의 확인을 거쳐 받아들여졌다. 감사패 증정 대상도 여덟 사람으로 결정되었다. 일본인 여섯 분(콘도 도미오, 히다 유이치, 호리우치 미노루, 타마노 세이조, 아다치 타이쿄와 아다치 치쿄 부부)과 재일동포 두 분(정홍영, 김례곤)이었다.

 

강릉시청이 청원을 신속하게 받아들여 준 것은 청원 내용이 의미있다는 판단 때문이었겠지만 거기에는 콘도 도미오 선생의 건강이 악화된 것도 큰 역할을 했다. 청원서를 낼 즈음 202111월에 콘도 선생께서 병원으로부터 6개월 남짓의 시한부 삶을 선고받으셨기 때문이다.

 

 

감사패 증정이 결정된 것은 20221월말이었다. 도쿄 소재 강원도대표부의 강병직 본부장과 문미현 부장이 직접 다카라즈카를 방문해 청원내용을 확인한 직후였다. 이후 강병직 본부장은 강릉시청의 박종시, 이준하, 박인순 계장 등의 실무진과 협력해서 신속하게 감사패가 전달되도록 애쓰셨다.

 

김한근 강릉시장 명의의 감사패는 2022326일 전달되기로 결정됐지만 사정이 급박해졌다. 콘도 선생의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이 급해진 청원자들과 실무자들은 감사패 전달이 결정되자마자 제작을 서둘렀지만 콘도 선생의 용태는 급속히 나빠졌다. 강릉시청의 담당 공무원들은 콘도 도미오 선생을 위한 감사패를 먼저 제작해 보내기로 했지만 그래도 시간이 모자란 듯 했다.

 

결국 강릉시청의 박인순 계장님은 콘도 도미오 선생의 감사패가 완성되자마자 이를 사진으로 찍어서 강병직 본부장과 나에게 보내주셨고, 나는 이 감사패 사진을 정세화 선생을 통해 콘도 도미오 선생에게 전달되도록 했다. 혼수상태가 계속되던 콘도 선생님은 잠깐 정신이 돌아오신 사이에 감사패 사진을 보신 후에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른 7분에게 대한 감사패는 예정대로 326일 전달되었다.

 

 

일본에는 양심적인 학자들과 활동가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한일관계가 어느 한쪽의 자존감을 상하지 않은 채 상생과 협력관계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콘도 도미오 선생이 바로 그런 분들 중의 한 분이었다.

 

대한민국의 지방정부가 한국을 사랑하는 일본인 활동가들에게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콘도 도미오 선생께서 생전에 그 같은 감사를 받고 돌아가신 것은 안타까운 상황에서나마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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