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1915년 고베수도 공사에서 희생된 3인의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정홍영 선생의 기록은 타마세의 매장묘를 확인하면서 끝났다. 정홍영 선생님은 이들이 틀림없이 니시타니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이 지역 사찰의 과거 기록을 뒤지고 묘지를 돌아보면서 묘비나 무연고 묘소를 찾아보았지만 이후 조선인 노동자들의 행적은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후 정홍영-콘도 도미오 선생은 효고현의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위한 다른 연구에 매진했고, 10여년에 걸친 연구 결과는 정홍영 선생의 <가극의 거리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다카라즈카와 조선인>3부로 구성되었다. 1부의 12개 장()은 연구 결과 보고서, 2부의 15개 장은 정홍영 선생이 인터뷰한 재일 조선인 115명의 증언이다. 3부에는 조사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들과 연표를 수록했다. 니시타니의 조선인 노동자 이야기가 11장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이것이 정홍영-콘도 도미오 조사연구팀의 첫 번째 조사연구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간사이 지역의 재일조선인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환영을 받은 역저이지만, 일반에는 큰 주목을 끌지 못한 채 잊혀 졌고, 책도 초판을 발행한 후 절판되었다. 필자가 절판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정홍영 선생님의 장남이신 이타미 거주 사진가 정세화 선생이 자신의 소장본을 특송 우편으로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필자가 정세화 선생을 만난 것은 2019년 최승희 선생의 일본 공연을 조사하기 위해 간사이 지역을 방문했을 때였다. 때마침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조선학교 중앙예술경연대회>를 참관했는데, 그 대회장에서 행사 기록을 담당하셨던 정세화 선생을 만났다.

 

빠르게 친해진 우리는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주로 최승희 선생 조사연구 이야기를 했고 정세화 선생은 조선학교 이야기를 해 주셨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가 곧 건립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것도 그때 정세화 선생님으로부터였다.

 

 

정세화 선생의 소개로 신도 도시유키(真銅敏之) 선생도 만났고 콘도 도미오(近藤富男) 선생님도 알게 되었다. 이분들은 정세화 선생의 부친 정홍영 선생님과 함께 효고현의 재일조선인사 조사연구나 답사여행에 동참하신 분들이었다.

 

콘도 도미오 선생님은 20001월 정홍영 선생님이 타계하신 후에도 조선관계 연구를 계속하셨다. 한국의 유기농 학교 급식과 한글 용례를 연구하신 글은 <무쿠게 통신>에 장기 연재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다카라즈카의 수도, 철도공사에서 희생된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비를 세우고 싶다는 정홍영 선생님의 유지를 잊지 않으셨다.

 

콘도 도미오 선생은 약 20년에 걸쳐 효고현과 오사카부의 지식인과 재일동포 활동가들의 노력을 규합한 끝에 마침내 20203<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세웠다. 고베수도공사와 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에서 희생된 5인의 조선인 노동자를 위한 추도비였다. <무쿠게 통신> 20205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콘도 도미오 선생은, 추도비를 건립하자마자 그길로 정홍영 선생의 묘소로 달려가 추도비 건립을 보고드렸다고 썼다.

 

 

원래 추도비는 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에서 사망한 2인의 조선인 노동자를 위해 건립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추도비 건립 직전인 20202, 콘도 도미오 선생님은 다카라즈카 타마세의 불교 사찰 만푸쿠지(滿福寺)의 주지 타이쿄 아다치 스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3인의 조선인 노동자의 참배묘가 만푸쿠지 경내에 마련되어 있고, 타마세 부녀회와 함께 1백년이 넘게 이들에게 무연고자 제사를 드려왔다는 말씀이었다.

 

이에 콘도 도미오 선생은 추도비 건립 관계자들과 의논해 당초 2명을 위해 건립하려던 추도비를 5인 추도비로 변경했고, 그해 326일 추도비 건립을 마쳤다. 정홍영 선생님이 타계하신지 20, 정홍영-콘도 도미오 조사연구팀이 고베수도공사 희생자들을 조사하기 시작한지 35년만의 일이었다. (2022/9/7,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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