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221일의 춘천 공연에 참가한 최승희 무용단원은 몇 명이나 되었을까? 공연 프로그램도 발견된 바 없고, 신문들도 이를 보도하지 않았으니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레퍼토리를 파악된다면 거꾸로 추론해 볼 수는 있다.

 

1931226일의 <매일신보>29일의 <동아일보>가 밝힌 춘천공연(2/21)과 부산공연(2/17-18)의 레퍼토리를 종합해 볼 때 춘천공연의 발표작품은 1931110-12일의 단성사 공연에서 발표된 14개 작품과 일치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춘천공연 초연작품으로 <엘레지의 독무>가 추가되어 모두 15작품이었다. 15개 작품의 제목과 <3회발표회>에서 각 작품을 발표한 무용수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1. <그들은 태양을 구한다>(최승희, 연구생 일동), 2. <방랑인의 비애>(최승희, 이옥희, 안정옥)>, 3. <정토의 무희>(장계성, 안정옥), 4. <그들의 로맨스>(최승희), 5. <이집트 풍경>(최승희, 연구생 수명);

2: 1. <인도인의 비애>(최승희), 2. <스페인 소녀의 무용>(김은파, 이옥희, 장계성), 3. <하와이 세레나데>(최승희, 김은파), 4. <향토무용>(장계성, 노재신, 이정자);

3: 1. <인도인의 연가>(최승희, 이옥희), 2. <집시의 무리>(연구생 일동), 3. <광상곡>(최승희), 4. <이 병정 못났다>(장계성), 5. <그들의 행진>(최승희, 연구생 일동); 기타: 춘천공연 초연작품 <엘레지의 독무>(최승희).

 

1930년 10월15일의 <조선일보>에 게재된 최승희의 제2회 신작무용발표회 프로그램. 그의 춘천공연 레퍼토리는 대체로 이 공연의 발표작품으로 구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작품 출연자들을 살펴보면 최승희 외에 이름이 등장한 무용수는 이옥희, 안정옥, 장계성, 김은파, 노재신, 이정자의 6명이다. 하지만 각종 매체에 실린 작품 사진을 보면, 군무 <그들은 태양을 구한다>에는 7명이 출연했고, <그들의 행진>에는 6, <이집트 풍경>에도 6명이 등장한다. 따라서 춘천공연에 출연한 무용수는 최승희를 포함하여 최소한 7명이상이었다.

 

그밖에도 음악반주 담당자와 스탭이 있었다. 1931110일의 <동아일보>에 따르면 최승희의 1931년 공연부터 피아노 반주에 이광준(李光俊), 바이얼린 반주에 최우은(崔又隱)이 참여하기 시작했고, 그밖에도 축음기를 다루는 음악담당자가 있었을 것이므로 반주 및 음악부원은 적어도 3명이었다.

 

19301015일의 <조선일보>에 따르면 조명과 무대감독 원우전(元雨田)과 김정환(金正桓)이 동시에, 혹은 공연별로 각각 최승희 공연의 무대장치와 조명을 담당하기 시작했다. 조명에는 1-2인의 조수가 더 필요했을 것이므로, 의상과 소품 담당자까지 더한다면 적어도 3-4명의 스탭이 참여했을 것이다.

 

1929년 12월19일의 <조선일보>에 실린 12월15일 낙성된 <춘천공회당> 사진.

 

여기에 매니저 역할을 맡은 큰오빠 최승일을 포함하면, 지방 순회공연 때의 최승희 무용단 규모는 대략 15명 내외로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춘천공연 당시 20세에 불과했던 최승희가 15명 내외의 무용단을 이끄는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더구나 지방 순회공연 때에는 때는 작품과 공연에 관한 것뿐 아니라 생활의 일부까지 통제할 수 있어야 했을 것이다. 대외교섭이나 회계의 문제까지 겹친다면 연구소를 인솔하는 일은 녹녹치 않은 문제였음에 틀림없다.

 

1927년경, 최승희의 무용유학 시절, 무사시사카이의 이시이바쿠무용연구소에서 찍은 사진. 이시이무용단은 대부분 가족에 의해 경영됐다.

 

스승 이시이 바쿠는 무용단 내부의 문제를 대부분 가족관계로 해결했었다. 초기 이시이무용단의 무용수들은 이시이 코나미와 이시이 에이코 등의 가족이었고, 내부 매니저와 회계담당은 부인 이시이 야에코가 담당했었다.

 

나이가 어렸던 최승희의 경우 작품 활동 이외에 무용단을 인솔하는 일이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경성의 무용연구소 경영에는 큰오빠 최승일이 매니저 역할을 맡고, 부친 최준현과 작은오빠 최승오까지 총동원되었다. 그러나 이들도 각기 직장인이었으므로, 가족의 도움을 얻을 수 없었을 지방 순회공연 때에는 최승희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jc, 2021/8/27초고; 2024/2/18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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