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221일의 최승희 춘천공연이 열린 곳은 <춘천공회당>이었다. 모든 신문기사들이 그렇게 보도했다. 그러나 그 공회당이 어디에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마치 , 그런 걸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있을까? 춘천에 오면 그게 어딘지 다 알텐데...’하는 투이다.

 

옛날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불과 80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지금은 춘천공회당의 건물이 사라진 것은 물론, 그것이 있었던 위치에 대한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이런저런 기록이 있었겠지만 일본의 패퇴 이후 벌어진 한국전쟁 통에 춘천은 쑥대밭이 되어버렸고, 과거에 대한 기록들이 대부분 불타버렸던 것이다.

 

1929년 12월20일의 <매일신보>는 춘천공회당이 완성되어 12월15일 낙성식을 가졌다고 보도했다.

 

19291218일의 <조선신문>에 따르면 춘천공회당이 완성되고 낙성식을 가진 것은 19291215일이었다. 도청소재지치고는 공회당을 가진 것이 매우 늦은 셈이다. <삼오회><춘천번영회> , 일본인 중심의 춘천시 발전을 위한 각종 단체들은 19278월부터 공회당 신축을 위한 기성회를 설립하고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1928910일의 <동아일보>는 경성의 민영휘가 2천원, 춘천의 최양호가 1천원을 기부했다고 보도한 것을 보면 춘천공회당 설립을 위해 일본인들뿐 아니라 조선인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192944일의 <조선신문>이 공회당 위치에 대한 첫 실마리를 제공했다. “공회당 부지는 제1후보지였던 면사무소 옆으로 결정되었고 43일 지진제(地鎭祭)를 올렸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49일의 <매일신보>는 공회당 자리가 면사무소 우측이라고 보도했고, 525일의 <조선신문>춘천면사무소 동편 옆으로 정해진 공회당 자리에서 땅을 고르는 지균(地均)공사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즉 춘천공회당은 춘천면사무소의 바로 동쪽 옆이었던 것이다.

 

일제의 <토지조사 지적원도(1916)>에 따르면 경성공회당의 주소는 <춘천군 부내면 가연리 67-1번지(파란원)>였다. 붉은원은 부내면사무소 자리.

 

한편 육군보병학교를 졸업하고 임관되어 춘천에 배속되었던 이대용(李大鎔, 1925-2017) 장군의 회고록에는 1950625일의 회상 중에는 춘천공회당에 대한 기록도 나타나 있었다.

 

하숙집은 죽림동 고개 능선 위에 있었다. 경사진 도로를 따라 약 300미터쯤 북쪽으로 내려가면 동서로 가로놓인 넓은 길과 만나게 된다. 바로 이 교차로 서남모퉁이에 춘천공회당이라는 큰 건물이 있었다. 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건물은 당시 대중 집회나 음악연주회, 기타 무슨 특별 공연이 있을 때 이용하는 공공시설이었다.”

 

이 회고에 따르면 춘천공회당은 1950625일까지 건재했다. 이 증언에 나오는 죽림동 고개 능선이란 육림고개를 가리키며, 육림고개에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가로놓인 넓은 길은 지금의 명동로이다. 따라서 춘천공회당의 위치는 육림고갯길과 명동로 교차로 서남모퉁이였고, 그곳은 명동로쪽 중앙시장 입구에 가까운 <문화극장(1961)> 자리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네이버지도에 표시한 춘천면사무소(붉은원)과 춘천공회당(파란원) 위치.

 

확인을 위해 1916년에 작성된 토지조사 원적도를 조사했다. 당시 주소로 <강원도 춘천군 부내면 가연리 66번지>국유지로 표시된 춘천면사무소 자리로 확인되었는데, 그 자리는 지금의 <브라운 5번가>라는 상가복합건물 중에서 <도쿄스시>가 있는 건물자리였다.

 

그 동쪽 옆인 <부내면 가연리 67-1번지>가 춘천공회당의 당시 주소였다. 지금의 주소는 <강원도 춘천시 죽림동 7-1번지>이다. 이 주소지는 <문화극장>이 헐리고 그 자리에 들어선 <춘천 명동 SR타워>의 오늘날 주소와 일치한다.

 

과거 <춘천공회당(1929-1950년대초)>와 <문화극장(1961-2004)>이 있었던 <춘천 명동 SR타워> 빌딩.

 

<춘천공회당(1929)> 자리는 <문화극장(1961)>이 있던 자리로 확인됐다. <문화극장><소양극장(1956)>, <육림극장(1967)>과 함께 춘천의 3대 개봉관으로 1980년대 초까지도 춘천시민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1970년대의 티비, 1980년대의 칼라티비의 보급으로 경영난을 겪기 시작했고, 20056개상영관을 가진 <플리머스 춘천>, 200812개 상영관을 가진 <춘천CGV>이 개업하자 극장을 계속하기 어려웠다.

 

<문화극장>은 한동안 <브로드웨이 극장>으로 개명하면서 변신을 시도했으나 결국 극장을 폐업하고 인근 땅을 추가 매입, 5백평 부지에 10층짜리 <명동 SR타워>를 건립했으나, 지금은 모종의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건물이 사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jc, 2021/8/27초고; 2024/2/18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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