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옛 포스팅을 찾아보니 <무용신 캠페인>을 처음 시작한 날은 2020221일이었습니다. 이인형 선생과 저는 각자의 페이스북과 몇몇 단톡방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이인형 선생의 당시 포스팅을 찾아 읽어보니 재일 조선학교 고베조고 졸업식을 참관하는데 무용부 학생들에게 발레슈즈를 선물하고자 하니 뜻있는 분들은 동참해 달라고 되어 있습니다.

 

고베조고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은 정세화 선생의 권고 덕분이었습니다. 이타미에 거주하시면서 간사이 지역에서 사진가로 일하시는 정세화 선생께서는 조선무용을 알고 싶다면 조선학교를 알아야 하니, 조선학교의 주요 행사에 참석해 보라고 권하셨습니다. 그해 15일 열렸던 고베조고 취주악부의 신년음악회에 참석한 것도 그 권고 덕분이었습니다.

 

2020년 1월5일, 고베시 히가시나다구의 구민회관에서 열린 제21회 고베조고 취주악부 신년 음악회

 

고베조고 취주악부는 매년 신년음악회를 엽니다. 교내 행사가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대외행사입니다. 내가 참석한 연주회도 고베시 히가시나다구(東灘区)의 구민센터에서 열렸고, 참석 관객은 재일동포뿐 아니라 일본인 관객도 많았습니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7-80년대에는 한국에서도 고등학교들이 대부분 취주악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흔히 밴드부라고 불렀지요. 중고등학교의 동아리 활동이 활발한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고등학교의 취주악부들은 훨씬 체계적이고 참가인원도 많고 연주 실력도 좋아서, 교내 행사뿐 아니라 대외 행사를 자주 갖는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각 지역 주요 고등학교 취주악부가 거리 행진 연주하는 동영상이 많습니다.

 

고베조고 취주악부는 거리 행진 연주를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매년 신년음악회를 엽니다. 2020년의 연주회가 제21회라고 하니까 고베시의 주요 음악 행사로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이지요. 연주곡에서도 기성곡뿐 아니라 창작곡이 포함되어 있었고, 연주 실력도 수준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일본 전국 고교생 콩쿨에서 3위를 했다는 3학년생의 플롯 독주가 있었고, <희망의 날개>라는 목관중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게 감동을 주었던 것은 <><>, <사향> 등의 합주곡이었습니다.

 

이날 연주회 프로그램의 설명을 보면 1999년 고베조고 창립50주년을 기념해 <>이라는 곡이 창작되었고, 10년 후인 2009년에는 <>, 그리고 이날 연주에서 초연된 <>은 모두 이역 땅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어온 넋과 얼, 그 가치와 힘과 결심을 온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으로 창작된 곡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2020년 1월5일, 고베조고 취주악부 신년음악회에서 만난 정세화 선생(가운데)과 필자(오른쪽).

 

레퍼토리는 전반적으로 심각했지만 고등학생들의 행사였던 만큼 형식은 퍽 자유로웠습니다. 사회자 여학생이 미리 준비한 멘트는 사려 깊으면서도 위트가 있었고, 연주 중간 중간에 상황극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맨 마지막 순서로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순서도 마련됐는데, 한국말을 모르는 일본인 관객들을 위해 발음과 해석을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당시 거의 모든 관심이 조선무용에 기울어져 있던 내게도 인상적인 순서가 있었습니다. 취주악 연주와 노래와 춤이 어우러졌던 <언제라도 우리는(いつだつてらは)>이라는 순서였는데, 고베조고 무용부 학생들이 찬조 출연했던 작품으로 기억됩니다.

 

두 달 전에 중앙예술경연대회를 참관했고, 이날 고베조고의 취주악 연주회를 감상한 나에게, 정세화 선생께서 한 가지 행사를 더 추천하셨습니다. 3월에 있을 조선학교 졸업식에 참석해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정세화 선생의 모교인 고베조고 졸업식을 추천하셨는데 아무래도 편의를 보아 주시기가 쉬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졸업식에도 참관하기로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에 처음 무용신 선물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일본땅에서 조선인으로 열심히 살아가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온 후 그런 생각을 이인형, 정세화 선생과 나누면서, 마침내 고베조고 무용부에 무용신을 선물하는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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