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221일의 최승희 춘천공연 주최는 4개 신문 춘천지국 연합이었다. <동아일보><조선신문>, <경성일보><매일신보>였다. <동아일보>가 포함된 것이 뜻밖이다. 다른 세 신문은 일본어 신문이거나 총독부 기관지였기 때문이다.

 

광고문을 빼면 춘천공연에 대한 기사는 모두 6개였다. 모두 춘천발 기사로 중앙지의 지방판에 실렸다. 춘천에도 독자적인 신문이 있었다면 보도가 더 자세했겠지만, 중앙지의 춘천발 기사는 대체로 간략했다. 그럼에도 이 기사들을 통해 최승희 춘천공연의 면모를 짐작해 볼 수는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인 226일의 <매일신보>는 이 공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931년 2월26일의 <매일신보>는 최승희의 춘천공연이 성황을 이루었다고 보도했다.

 

최승희양 신작무용공연회는 지난 11일 저녁 춘천공회당에서 열렸는데 개회 정각한 시간 전에 벌써 사방에서 운집한 관중으로 인하여 그처럼 큰 공회당도 문자 그대로 입추의 여지없이 메어버려서, 그 후로 속속 밀려드는 광중은 아직도 문밖에서 물결치고 있었으나 부득이 만원으로 입장을 시키지 못하였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수백 관중은 혹은 문을 차고 들이밀며 혹은 창문을 열고 뛰어드는 판에 춘천경찰서로부터는 십여 명 정사복 경관이 출동하여 그들을 위무하여 돌려보내기에 노력하는 등 실로 공전절후의 대성황을 극하였다. ... 밤 열시 반 대성황리에 무용회의 막이 닫히었다.”

 

이 기사는 최승희 춘천공연이 관객 동원의 면에서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서술했다. 공회당의 정원은 5백명 정도였으나, 그 외에도 수백명이 더 몰려와 입장하지 못한 채 문을 차고 들이밀거나 창문을 열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다. 이들을 귀가시키기 위해 경관 10여명이 출동했을 정도였다.

 

공연이 성황을 이룬 것은 최승희의 명성과 함께 언론보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219일의 <경성일보><매일신보>최승희는 조선이 가진 베스트원의 천재적 처녀무용가라고 소개했고, 211일의 <동아일보>춘천에 있어서는 처음 되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1931년 2월17일의 <조선신문>은 최승희무용단의 춘천공연은 "최승희 일행의 희생적 양보"로 열릴 수 있었다고 보도했다.

 

217일의 <조선신문>도 이 춘천 공연이 최승희 일행의 희생적 양보에 의해 겨우 공연할 수 있게 된 것이어서, 향후 몇 년 다시 공회의 기회를 얻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고, 공연당일에도 <조선신문>앞으로 수년간은 춘천에서 최승희양의 예술을 볼 수 없을 것이라면서, “무용공연의 개막은 7시 반이지만 그 1시간 전부터 막전 행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공회당에 일찍 도착해야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공연의 양질성과 희소성의 홍보였지만, 그에 더해 효용성 전략도 구사되었다. 219일의 <매일신보>살인적 불경기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감정이 북어깍두기같이 시들어진 것을 위안하며 약간이나마 활기를 부어주고자 함이 공연의 목적이므로 이날을 놓치지 말고 달려와 영혼의 위안과 생활의 윤택을 마음껏 만끽하기를 권했다.

 

1929년 미국 증시에서 시작된 대공황의 여파가 일본과 조선을 덮쳤을 때이므로 살인적 불경기라고 했고, 이로 인해 북어깍두기같이 시들어버린 사람들의 감정을 위안하고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북어깍두기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1931년 2월20일의 <경성일보>는 최승희의 춘천공연이 "살인적인 불경기로 피폐해진 춘천시민들을 위안하기 위해 열렸다"고 보도했다.

 

4개 중앙지의 다각적인 홍보 전략은 효과를 발휘했던 것 같다. 춘천공회당의 5백석을 모두 채우고도 수백 명이 공연을 보지 못한 채 귀가해야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렇게 예상 밖으로 많은 관객이 몰렸을 경우 최승희는 공연 날수를 연장하거나 공연 횟수를 늘려서 관객들이 불만을 갖지 않도록 배려하곤 했었다.

 

그러나 춘천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224일 대구공연의 일정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21일 춘천 공연을 마치고 22일 아침에 일찍 춘천을 출발해 그날 오후에 경성에 도착하더라도 23일 아침에는 다시 대구로 출발해야했기 때문이다. <조선신문>의 예고대로 최승희의 춘천공연은 다시 이뤄지지 못했다. (jc, 2021/8/27초고; 2024/2/18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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