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중 선생 인터뷰를 계기로, 정병호 선생이 관람했던 최승희 공연이 언제(19414월 혹은 19422), 어디서(경성 또는 광주) 열렸던 것이었는지, 최승희 선생의 1940년대 공연들을 중심으로 추론해 가는 중이다.

 

(정병호 선생이 최승희 공연을 처음 보았던 것이 중학 시절이라고 했으므로, 정병호 선생이 재학했던 중학교가 어느 중학교였는지 알아낸다면 추론의 범위는 훨씬 좁혀질 테지만, 아직 그 점을 조사해 내지는 못했다. 정병호 선생이 경성에서 중학교를 다녔다면 그가 보았던 최승희 공연은 19414월의 경성공연이나 1942년의 경성공연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만일 그의 중학교가 광주에 있었던 것이라면 19414월말이나 19422월말의 광주공연이었을 것이다.

 

정병호 선생의 중학교를 알아내면 훨씬 간단할 수 있을 추론을 이처럼 복잡하게 진전시키는 데에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그동안 최승희 선생의 공연활동을 조사해 오면서 가장 취약했던 것이 1940년대의 공연들이었다. 따라서 박경중 선생이 언급하신 정병호 선생의 공연관람 에피소드를 계기로 아예 1940년대의 공연 전체, 특히 1941-1942년의 일본과 경성의 공연활동을 조사해 보는 것이 최승희 연구 전체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공연의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정병호 선생이 관람한 최승희 무용공연을 추론해 보기로 하자. 정병호 선생은 자신이 처음 관람한 최승희 공연에서 <에헤야 노아라><초립동><보살춤>을 관람했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보살춤>은 어린 중학생의 눈에도 선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 때문에 공연 관람 후에는 최승희 공연 때마다 판매되었던 최승희 무용사진 브로마이드를 사가지고 돌아왔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병호 선생이 보았던 공연의 레퍼토리에 대한 서술을 조사하면서 한 가지 난점이 떠올랐다. 그것은 1941-1942년의 공연에서 <초립동><보살춤>은 레퍼토리의 일부였음이 확인되었지만, <에헤야 노아라>가 공연된 사실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19412월의 도쿄공연(귀조 제1회 공연)과 그 이후의 후속공연들의 레퍼토리는 모두 13작품으로 그중 전통작품이 2, 동양작품이 3, 조선작품이 8개였다. 이 레퍼토리는 4월초의 경성공연과 4월말의 광주공연에서도 거의 그대로 발표되었을 것이다.

 

1(1) 두 개의 속무(조선), (2) 검무(전통), (3) 옥적조(조선), (4) 화랑무(조선), (5) 신노심불로(조선), (6) 보현보살(동양), (7) 두 개의 전통적 리듬(전통), 2(1) 긴 소매의 형식(조선), (2) 꼬마신랑(조선), (3) 관음보살(동양), (4) 가면무(조선), (5) 동양적 선율(동양), (6) 즉흥무(조선).”

 

 

한편 194111월의 도쿄공연(이른바 귀조 제2회 공연)과 그 이후의 후속 지방공연들의 레퍼토리는 모두 12작품이었고, 그중 일본무용이 6, 국적을 밝히지 않은 조선무용이 5, 중국무용이 1개였다. 이 레퍼토리를 공연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전의 춤 (일본), 2. 화랑의 춤 (조선), 3. 옥피리의 곡 (일본), 4. 천하대장군 (일본), 5. 칠석의 밤(일본), 6. 즉흥무(고곡), 7. 무혼(일본), 8. 보살도(가무보살과 보현보살, 일본), 9. 초립동(조선), 11. 당궁의 무희(중국), 10. 옥중춘향(조선), 12. 세 가지 전통 리듬(조선).

 

 

두 레퍼토리에 모두 <초립동><보살춤>이 들어있으므로 정병호 선생이 관람했던 공연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에헤야 노아라>는 두 작품 모두에 들어 있지 않다. 사실 <에헤야 노아라>는 최승희 조선무용의 데뷔작이자 최고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주 순회공연의 레퍼토리에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만일 <에헤야 노아라>라는 제목이 변경되었다면, 그 작품은 <신노심불로>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최승희의 유럽순회공연 취재기에서도 어느 정도 밝혔지만, <신노심불로><에헤야 노아라>에 스토리를 강화한 작품이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두 제목의 작품이 모두 노년의 조선인 남성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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