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공연 전후의 최승희무용단 일정을 보면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1931221일의 춘천 공연 4일전인 217-18일에는 부산공회당에서 공연이 있었고, 그 사흘 뒤인 224-25일에는 대구극장에서 공연이 열렸다.

 

부산 공연의 한달 반 전인 1931110-12일에는 경성의 단성사에서 신춘무용공연이라는 이름으로 <3회최승희신작무용발표회>가 있었고, 열흘 전인 27-9일에는 경성공회당에서 <2회최승희무용공연회>가 열렸다. 이 두 공연에서 발표된 신작을 가지고 최승희무용단이 지방공연에 나섰던 것인데, 그 첫 공연이 부산공연이었던 것이다.

 

부산공연 다음에는 보통 대구에서 공연을 가지는 것이 관행이다. 거꾸로도 마찬가지였다. 대구 공연을 가진 다음에는 거의 예외 없이 부산공연이 이어졌다. 이는 경부선 철도로 쉽게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대구까지는 철도로 3시간 거리였다. 217-18일에 부산공연을 했다면, 19일 하루만 쉬고 20-21일에는 대구공연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1931년 2월21일로 정해진 최승희 무용단의 춘천공연은 4개 신문의 춘천지국들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산과 대구 공연 사이에 춘천 공연이 끼어들었다. 그 때문에 이동 동선이 복잡해지고 말았다. 부산-춘천 사이에는 철도뿐 아니라 자동차편도 없었다. 따라서 부산에서 춘천에 가려면 기차로 경성으로 돌아왔다가 자동차로 춘천에 가야했다. 춘천 공연이 끝나고도 마찬가지였다. 자동차로 경성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기차로 대구로 향해야 했다.

 

그래서 17일부터 21일까지 5일이면 충분했을 부산과 대구 공연이었지만, 그 중간에 춘천공연이 끼어드는 바람에 부산-춘천-대구 공연을 하는데 17일부터 25일까지 거의 열흘이 걸렸다. 대구 공연을 마친 후 최승희 무용단은 마산(26-27), 이리(31), 전주(2-3), 군산(4-5), 김제(6), 예산(7) 공연을 이어나갔다.

 

다시 말해 경상도에서 전라도를 거쳐 충청도를 돌아 경성으로 돌아오는 남쪽 지방공연 중에 춘천 공연이 느닷없이 끼어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1931211일의 <동아일보>금번 본보 춘천지국에서는 신춘사업으로 최승희양을 초빙하여 221일부터(음력 정월5) 시내 공회당에서 무용공연회를 개최하리라고 보도했다. 즉 최승희 춘천공연은 초빙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1931년 2월11일의 <동아일보>는 최승희의 춘천공연이 춘천 신문사의 "초빙"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춘천공연은 <동아일보>뿐 아니라 <조선일보>, <경성일보>, <매일신보> 4개 언론사의 춘천지국들이 공동 주최했으므로 사실상 춘천 언론사들의 연합초빙으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더해 217일의 <조선신문>춘천에서는 최승희무용단 일행의 희생적 양보에 의해 겨우 공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보도했다. 최승희 무용단이 감수한 희생적 양보란 무엇일까?

 

위에 서술한 최승희 무용단 순회공연 일정에 따르면 경상-전라-충청 지역 공연이 이미 세워진 후에 춘천 공연 초빙이 이뤄졌고, 최승희는 이 초빙을 거절할 수 없었으므로 부산과 대구 공연 사이에 춘천공연을 끼워 넣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1931년 2월17일의 <조선신문>도 최승희의 춘천공연을 보도했다. <조선신문>은 이 공연의 주최측이 아니었지만 춘천공연을 지속적으로 보도했다.

 

이 같은 일정조정으로 최승희 무용단은 부산-대구(기차)’의 이동경로를 부산-경성(기차)-춘천(자동차)-경성(자동차)-대구(기차)’로 변경해야했고, 기차로 수 시간에 불과했을 부산-대구사이의 이동경로가 34일로 늘어났다. 춘천공연의 예상 수익이 거의 없었던 수준이었으므로, 춘천 공연을 수용한 것은 최승희 무용단의 희생적 양보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춘천 공연이 끼어들게 되자 최승희 지방공연 일정은 전체적으로 재조정되어야 했을 것이다. 지방공연의 시작이었던 부산 공연의 일정을 더 앞으로 당겨야 했거나, 춘천 공연이 끝난 후의 대구공연과 그 이후의 모든 공연 일정을 다시 조정해야했을 것이다.

 

수익 가능성조차 낮았는데도 최승희가 희생적 양보를 하면서 춘천 공연 초빙을 단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춘천 공연 초빙을 거절하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jc, 2021/8/23초고; 2024/2/18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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