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선생의 삶과 춤을 연구하면서 ‘최승희에 빙의됐다’는 말을 듣곤 했다. 연구노트를 쓸 때나, 저널과 학술지에 발표할 글을 쓰면서 최승희의 심정이나 의도를 추측한 내용을 덧붙이곤 했기 때문이다. ‘무속’이라는 비아냥은 아니더라도 ‘객관적이지 않다’는 비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사회학개론>에서는 사회학에 세 유파가 있다고 요약하곤 한다. 경험주의(empiricism)는 “기록”을 찾아 읽고, 해석학(hermeneutics)은 “기록의 뜻”을 이해하려 하고, 비판(criticism)은 “기록의 숨은 뜻”을 드러내려고 한다. 사실 그 셋은 배치되지 않는다. 사건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세 가지를 다 섭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빙의’라는 무속 용어는 사회학에서 ‘해석’과 ‘비판’을 위한 방법론이 된다. 심리학과 자기개발서들이 애용하는 ‘감정이입’이나 ‘공감’도 굿판의 ‘빙의’와 비슷한 말이다. 일상에서 쓰는 “입장 바꾸기(switching shoes)”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말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콘도 도미오 선생에게 빙의를 시도했다. 그는 남익삼씨의 참배묘가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 어떤 생각이었을까?
2020년 2월23일 콘도 선생은 다카라즈카 시립중학교 교원 시절 동료였던 다이꼬꾸 스미애(大黑澄枝) 선생의 전화를 받았다. “조선인 노동자 3명의 참배묘가 타마세의 만푸쿠지(滿福寺)에 마련되어 있고, 부녀회와 사찰이 1백년 넘게 제사를 드려왔다”는 것이었다. 다이꼬꾸 선생이 교원 시절의 제자였던 아다치 유리(足立有里)씨의 메시지를 콘도 선생에게 전달한 것이다.
아다치 유리씨는 만푸쿠지의 5대 주지 아다치 타이쿄(足立泰敎)씨의 부인이고, 자신도 아다치 치쿄(足立智敎)라는 승명(僧名)으로 4대 주지를 역임한 바 있다. 그는 역대 주지 스님들을 통해 자신에게 전해 내려온 이야기를 다이꼬꾸 선생을 거쳐 콘도 선생에게 전달한 것이다.
“참배묘가 타마세의 만푸쿠지에 있다”는 소식은 콘도 도미오 선생에게 놀라운 충격이었을 것이다. 정홍영-콘도 도미오 조사팀은 1986년 가을 타마세에서 세 조선인 희생자의 매장묘터를 발견한 바 있었다. 이어서 이들의 참배묘를 찾기 위해 니시타니의 묘지와 사찰을 샅샅이 조사했으나 찾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이것은 다소 의문이다. 매장묘가 타마세에 있었다면, 참배묘도 그 인근에 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추론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두 사람은 타마세에서 참배묘를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만푸쿠지가 조사에서 누락되었던 것일까? 혹은 조사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떤 경우라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마도 콘도 도미오 선생은 “그때 왜 만푸쿠지를 더 세밀히 조사하지 않았던가” 하는 회한을 가졌을 법하다. 그때 참배묘를 발견했더라면 추도비는 더 일찍 세워질 수도 있었고, 정홍영 선생도 소원이던 추도비 건립을 본 후 타계하셨을 것이다.
다른 한편, 콘도 도미오 선생은 뒤늦게나마 참배묘가 발견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음에 틀림없다. 정홍영 선생이 타계하신 뒤로 20년이나 더 찾았던 참배묘가 우연한 기회로나마 발견된 것은 얼마나 반가운 일이었겠는가. 더구나 추도비 건립 직전이어서 때가 좋았다. 다섯 명의 희생자의 이름을 한꺼번에 추도비에 새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후 콘도 도미오 선생이 타계하신 것을 생각하면 이때의 발견은 더욱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 발견 덕분에 정홍영-콘도 도미오 조사팀은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사명을 35년 만에 완수하고 세상을 떠난 셈이 되었다.
또 콘도 도미오 선생은 만푸쿠지의 아다치 타이쿄와 아다치 치쿄 부처, 그리고 동료 다이꼬꾸 스미애 선생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정홍영 선생과 자신은 매장묘터를 밝히는 데 그쳤지만, 이들의 도움으로 참배묘까지 찾은 것이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2020년 2월23일 만푸쿠지의 참배묘 소식을 들은 콘도 도미오 선생이 이렇게 ‘회한’과 ‘안도’와 ‘감사’의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감개무량했었을 것임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2022/9/13,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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