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영 선생이 발굴한 또 하나의 중요한 기초자료가 매장인허증이다. <가극의 도시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의 제1부 제1<니시타니 산 속에 잠든 조선인들>에 따르면 정홍영 선생이 이 3장의 매장인허증을 입수한 것은 1985년 봄이었다고 한다.

 

내가 고베수도 건설공사에 참가한 조선인을 처음 알게 되고 조사까지 하게 된 것은 다카라즈카 시 역사편찬실에 보존되어 있던 오래된 매장 인허증 때문이었다. 1985년 초부터 봄 무렵에 걸쳐서 나는 당시 사카세카와(逆瀬川)에 있는 다카라즈카시 중앙공민관 2층의 방 4개를 차지한 시사(市史)편찬실에 여러 번 간 적이 있다. ...

 

몇 번이나 다니는 동안에 거기서 시사(市史) 편집담당 주사로 근무하는 와카바야시 야스시(若林泰)씨와 친분이 생겼다. ... 어느 날 특별한 용무 없이 근처를 지나다가 잠시 들렀는데, 나를 보자마자 와카바야시씨가,‘, 정선생, 마침 잘됐네요. 연락하려고 했거든요. 이런 게 있는데 뭔가 참고가 될까요?’ 하며 복사한 것을 석 장 보여주셨다. 손에 받아들고 보니 모두 조선인의 이름이 적힌 옛날 니시타니 촌사무소가 발행한 매장인허증 사본이었다.

 

첫눈에 내 눈길을 끈 것은 그들의 사망 시기가 1914년과 1915년이었던 점이다. 내무성 경보국(警保局)의 통계보고서 <조선인개황(朝鮮人概況)>에 따르면, 1915년에 조선인은 일본 전국에 3986, 효고현에는 218명이 있었다. 물론 이 숫자를 전적으로 믿을 수는 없겠는데, 한일합방 이후 불과 4, 5년밖에 지나지 않은 오래전 시기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런 시기에 외딴 니시타니 마을에 조선인이 살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고, 그것만으로도 크게 놀랄만한 일이었다.“

 

정홍영 선생의 저서 <가극도시의 또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 17쪽에 수록된 3장의 매장인허증

 

이렇게 해서 고베수도공사에서 순직한 조선인 노동자 김병순, 남익삼, 장장수씨에 대한 정홍영 선생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매장인허증에는 세 사람의 이름뿐 아니라 주소와 발행날짜를 비롯한 몇 가지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으므로, 사고의 시기와 매장일, 그리고 각 순직자들의 나이도 짐작할 수 있었다.

 

정홍영 선생과 마찬가지로 나도 세 순직자의 사망 시기에 주목했다. 김병순씨의 매장허가 날짜는 191483일로 가장 빨랐고, 1915121일에 매장허가가 난 남익삼씨가 두 번째, 그리고 1915324일에 매장허가를 받은 장장수씨가 가장 나중이었다.

 

고베수도공사는 3차에 걸쳐 이뤄졌다. 1897-1905년의 창설공사로 고베수도가 완공됐고, 급격히 증가하는 고베 인구의 상수도 수요를 맞추기 위해 1911-1921년에 제1차 확장공사, 일차세계대전 이후의 호황기로 고베의 산업과 인구가 더욱 늘어나자 1926-1936년의 제2차 확장공사가 이뤄졌다. 따라서 김병순, 남익삼, 장장수씨가 참가했던 고베수도공사란 제1차 확장공사임이 분명했다.

 

한편, 매장인허증에 나타난 김병순씨의 생일은 1883(메이지16) 519일생으로 명기되어 있어 사망 당시의 나이가 31세였음을 알 수 있다. 다른 두 사람의 생년월일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남익삼씨의 나이가 37, 장장수씨는 27세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남익삼씨는 대략 1877년생, 장장수씨는 1887년생 정도로 추정될 수 있다.

 

1929년에 발생한 다이너마이트 폭발사고로 사망하거나 중경상을 입은 5명의 나이가 모두 19세에서 25세 사이였던 것과 비교하면 고베수도공사에서 사망한 3인의 나이가 더 많았다. 1870년대와 1880년대에 태어난 고베수도공사에 참여한 이들은 아마도 일본으로의 노동이민 제1세대이자 후쿠치야마선 철도개수공사에 참여한 노동자들의 아버지 세대였음에 틀림없다.

 

이후 정홍영 선생은 고베수도공사 중에 순직한 3인의 조선인 노동자의 사망 장소와 사망 이유, 그리고 이들이 매장된 묘소를 찾기 위한 연구를 계속했고, 상당한 성과를 이뤘다. 이를 숙지하면서 나는 이 3인이 떠나온 조선반도 내 연고지를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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