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 중에 사망한 윤길문, 오이근씨의 조선내 연고지 조사는 다이너마이트 폭발 사고를 보도한 4개 신문 기사 덕분에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경남 고성군 고성면이 그 분들의 고향이 맞는지를 현지 자료로 확인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고베수도공사 중에 사망한 김병순, 남익삼, 장장수씨의 조선내 연고지를 찾는 일은 조금 더 어려웠습니다. 이분들이 사망한 후에 니시타니 촌사무소에서 발행한 매장인허증에 본적지를 기입하는 난이 있기는 했지만, 그 기록이 그리 정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매장인허증의 주소난이 비어있는 경우도 있었고, 본적지 주소가 아닌 현주소가 기입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조선의 주소가 기록되어 있더라도 읽기가 어렵거나 당시 조선에 없는 주소가 기록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이걸 읽어내는 일은 마치 암호해독 작업과 유사한 듯 했습니다.

 

 

그래도 손쉬운 일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고 그들의 생년이 추적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우선 김병순(金炳順)씨는 생년월일이 1883519일로 명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장인허증 발행일이 191483일이었고, 그날 오후2시 이후에 매장하도록 지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망일은 그 전날인 191482일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공사중이었던 당시에 조선인 동료가 사망했다고 3일장이라도 치를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익삼(南益三)씨와 장장수(張長守)씨의 매장인허증에는 생년월일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지만 두 사람의 나이가 각각 37세와 27세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남익삼씨는 대략 1877년생, 장장수씨는 1887년생으로 추정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게 되지만 생년이라도 아는 것은 족보를 조사할 때에 매우 유용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세 사람의 조선내 연고지 조사가 가장 손쉽게 해결된 것은 장장수씨였습니다. 그의 현주소는 타마세촌 이즈리하 1번지의 45”라고 분명히 기입되어 있었지만, 조선의 본적지 주소는 누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연고지 파악 불가로 결정하고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김병순씨의 매장인허증에 나타난 조선내 본적지 주소는 조선 강원도 강릉군 북일리(北一里) 대천동(大天洞)”이었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님은 강릉군(江陵郡)”강화군(江華郡)”으로 읽으셨기 때문에 강화도를 조사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만큼 매장인허증의 기록된 서체는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일리라는 지명이 강릉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저는 김병순씨의 고향이 강릉이었을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191441일 단행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강릉군의 북일리면과 북2리면, 그리고 남1리면이 합쳐져서 군내면(郡內面)이 되었지만, 이미 그 전에 일본으로 건너간 김병순씨는 그런 사실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의 고향 주소는 북일리()’으로 기입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추후 조사를 통해 대천동대창리의 잘못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마도 발음이 비슷해서 생긴 착오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김병순씨의 본적지 주소는 오늘날의 강릉시 포남도 혹은 교동으로 특정화될 수 있었습니다.

 

 

한편, 남익삼씨의 본적지 주소는 해독하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매장인허증에 나타난 그의 본적지 주소를 얼른 보이는대로 읽는다면 조선 충청도 춘원군 연북면 선삼촌입니다. 그러나 1915년 당시에도 충청도는 없었고, 당시의 조선 행정구역 이름을 모두 뒤져도 춘원군이나 연북면, 혹은 선삼촌이라는 지명은 없었습니다.

 

저는 이중 춘원이라는 이름과 선삼이라는 이름을 키워드로 당시의 행정구역 이름을 전부 찾아보았습니다. ‘춘원면이 고성군에 있었고, 춘원면 안에는 ()삼촌이 아니라 ()삼촌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광()자와 선()자가 비슷하므로 착각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춘원면 광삼촌으로 기재된 남익삼씨의 본적지 주소는 오늘날의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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