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무용신 방문단은 오사카조선중고급학교의 <창립70주년 기념공연> 관람 뿐 아니라, 효고현 다카라즈카시의 조선인 추도비를 참배하고, 그 지역 주민들과 작은 음악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다카라즈카 행사가 일정에 포함된 것은 짧게는 지난 2년 동안 이 지역에서 일어난 일 때문이지만, 길게는 지난 18년 동안의 역사가 새롭게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2020326일 다카라즈카(寶塚)시 다케다오(武田尾)에서 가까운 사쿠라공원() 입구의 신스이광장(親水広場)5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을 기리는 추도비가 세워졌습니다. 앞면에는 월조남지(越鳥南枝)’라고 한자로 씌여 있고, 그 아래 다섯 희생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베수도공사 중에 사망한 김병순(金炳順), 남익삼(南益三), 장장수(張長守)씨와 후쿠치야마선 철도공사에서 사고로 숨진 윤길문(尹吉文), 오이근(吳伊根)씨가 바로 그들입니다.

 

 

일본 전역에는 약 170여개의 조선인 추도비/위령비가 세워져 있고, 사진작가 안해룡 선생은 그밖에도 30여개의 추도비를 더 찾아냈습니다.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는 일본내 약 2백여개의 조선인 추도비 중에서 가장 최근에 건립된 것일 뿐 아니라, 한일 양국 시민들과 재일조선인 동포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로 세워진 것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입니다.

 

추도비 뒷면의 설명에 따르면 김병순, 남익삼, 장장수씨는 1914-1915년의 고베수도 개수공사 중에 사망했는데, 타마세 주민들은 그 유해를 마을 공동묘지에 안장하고, 불교사찰 만푸쿠지(滿福寺)에 위패를 모신 후 108년 동안 무연고자 제사를 드려 왔습니다.

 

한편, 재일조선인 지역사가 정홍영(鄭鴻永) 선생과 일본인 교사 콘도 도미오(近藤富男) 선생은 1929년 철도공사에서 사망한 윤길문, 오이근씨의 사망 경위와 결과를 발굴해 <가극의 거리의 또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에 기록했습니다.

 

 

정홍영 선생의 타계 후 콘도 도미오 선생은 이분들을 위한 추도비를 세우기 위해 약 20여년간 노력한 끝에 오사카와 고베, 그리고 한신 지역의 일본인 활동가와 재일조선인들의 협력을 얻어 20여년만에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건립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국의 <팀아이><무용신> 회원들은 순난자들의 한국내 연고지를 조사한 끝에, 김병순씨의 고향이 강원도 강릉임을 확인하고, 강릉시에 추도비 건립자들에게 감사패를 증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냈습니다. 이 청원은 받아들여졌고, 2022326, 추도비가 세워진 지 2년 만에 강릉시를 대신해 도쿄 소재 강원도본부의 강병직 본부장이 다카라즈카를 방문해 8분의 추도비 건립 공헌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강릉시와 강원도의 감사표시에 고무된 타마세 마을 주민들은 향후에도 순난자들의 제사를 계속하기로 하는 한편, 이들의 참배묘 주위에 무궁화와 진달래를 심어 추도공원으로 꾸미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공원은 내년 326일에 맞춰 조성되고 개장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순난자들의 사망 이후 1백여년, 정홍영-콘도 도미오 선생의 조사와 발굴 및 기록 이후 20여년, 그리고 추도비가 건립된 후 2년 동안,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는 이 지역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번 <우리학교 무용신> 방문단이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방문하고 참배하기로 한 것도 이 일련의 사건들이 좋은 결과를 맺은 결과입니다. 또 추도비 참배에 그치지 않고 작으나마 음악회를 열기로 한 것은 조선인 순난자들을 잘 보살펴주신 일본인 주민들과 재일동포들에게 감사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20세기 한국과 일본은 불행한 역사 속에 살았지만, 양국의 시민들은 냉혹한 외교와 정치 속에서도 인류애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인지상정을 표현하고 배려해 왔습니다.

 

방문단의 다카라즈카 방문을 통해, ,일 양국의 불행한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두 나라 시민들 사이의 우호와 선린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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