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리스크의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2019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설립당시에는 <고려인 민족학교>라는 이름이었지만, 이듬해에 학교 이름을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로 개명했습니다. 연해주 고려인의 지도자 최재형 선생을 기리기 위해서였지요.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는 한글 교육과 고려인 문화예술 교육을 목표로 합니다. 김발레리아 교장 선생은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설립 이념을 소개하면서 고려인들이 언어와 문화를 잃지 않아야 차별과 소외의 환경 속에서도 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한 사회일원으로 더 큰 몫을 다할 수 있다고 말하고,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설립 이념은 우리 후손들이 한글과 문화전통 교육에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같은 설립 이념에 맞춰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는 한글학교와 예술학교로 나누어 교육 프로그램을 운용합니다. 202310월 현재 한글학교의 재학생은 총140, 예술학교의 등록학생은 총80명이고, 이와는 별도로 30명 원아의 유치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김발레리아 교장 선생은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힌 분으로, 일찍부터 고려인들의 한국어 교육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김발레리아 교장선생은 1982년 우즈베키스탄의 국립문화예술대학교(O'zbekiston Davlat San'at va Madaniyat Instituti)를 졸업하고 타슈켄트에서 예술문화 프로그램 매니저로 일하던 중,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90년 우수리스크로 가족과 함께 이주했습니다.

 

 

우수리스크 이주 당시 30세였던 김발레리아 선생은 한국어를 익혀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할 때는 가족과의 소통을 제외하고는 한국어를 쓸 일이 거의 없었지만, 우수리스크의 고려인 사회에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한국어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2년간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힌 김발레리아 선생은 이내 우수리스크 고려인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습니다. 1994년부터 1998년까지는 원동신문의 편집장을 역임했고, 2004년부터 2019년까지 15년 동안 우수리스크 고려신문의 편집장도 맡았습니다.

 

 

한글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한 김발레리아 선생은 2000년 고려민족자치회 안에 한글학교를 설립하고, 그 자신이 교사가 되어 학생과 성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년에 가까운 한국어 교육 활동을 바탕으로 결국 2019년 고려인 민족학교를 설립하기에 이른 것이지요.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의 예술교육은 조선무용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김발레리아 선생은 1996년 우수리스크의 고려민족자치회 안에 <아리랑 가무단>을 설립하고 한국무용을 가르치면서 공연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전공분야였기 때문에 금방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고, 특히 조선에서 파견된 무용가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아리랑 가무단>의 조직과 공연력은 빠르게 향상됐습니다.

 

 

35명의 단원으로 구성된 <아리랑 가무단>은 우수리스크와 연해주 주요도시 공연은 물론, 20032월에는 모스크바의 청소년 예술축전에서 연해주 대표로 참가해 1등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19998월의 한국공연으로 시작해 북한과 중국, 미국 공연을 진행한 바 있고, 이같이 활발한 공연 활동을 이유로 2005년에는 블라디보스톡 시정부로부터 공훈무용단 칭호를 받았습니다.

 

 

<아리랑 예술단>의 조직과 활동이 궤도에 오르자 김발레리야 선생은 2008<화랑 모듬북팀>을 설립했는데, 이 역시 활발한 공연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2년 고려인 강제이주 75주년 기념공연을 비롯해 2015년 블라디보스톡 극동콘서트와 모스크바 국제 콘서트에서 1등상을 수상한 바 있고, 2021년에는 <최재형 선생님을 기리며> 추모공연에도 출연했습니다.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와 그 부설 <아리랑 가무단><화랑 북팀>은 연해주 민족 교육과 민족예술 교육을 위한 튼튼한 발판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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