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가 끝난 후에는 긴 중간 휴식(ENTR’ACTE)이 있었다. 9개의 작품을 모두 독무로 공연한 최승희는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막간 휴식이 끝난 후 시작된 3부에서는 <초립동(1937)>, <춘향애사(1939)>, <검무(1934)>, <무녀춤(1936)>의 네 작품이 발표되었다.

 

3-1. 프랑스어로 꼬마 신랑(Enfant marie)”으로 번역된 작품의 원제는 <초립동>이다. 프로그램은 이 작품이 과거 한국에서는 조혼이 성행했다고 소개하고 결혼식을 마친 후 더 이상 아이가 아니고 어른이 되었지만 꼬마신랑은 풀로 만든 모자를 쓴 채 명랑하고 순진하게 행동한다고 작품을 설명한 후 과연 꼬마신랑은 사랑을 아는 걸까?”하고 묻는다.

<초립동>, 꼬마 신랑(Enfant marie)

 

풀잎으로 만든 작은 모자(petit chapeau d'herbes)’란 초립(草笠)을 가리킨다. 초립은 어린 나이에 결혼한 사람이 쓰던 갓을 가리키며 보통은 가늘고 누런 빛깔이 나는 풀이나 말총으로 엮어서 만들었던 작은 모자이다. 순 한국말로는 풀갓이라고도 불렀다. 최승희가 <살 플레옐> 공연을 마친 후 이 모자가 파리 여성들에게 유행했다는 기록도 있어 당시 최승희의 <초립동>과 그 소품 초립의 인기를 짐작케 한다.

 

로스엔젤레스 공연 직후에 공연평을 실었던 <신한민보>는 이 작품을 <신랑춤>이라고 불렀고 코흘리는 초립동이가 신부를 맞는데 청바지 저고리에 분홍 두루막을 입고 초립을 쓰고 혼자 남모르게 좋아서 춤도 추고 생각도 하고 명상도 해보는 로맨스의 곡이라고 해설했었다.

 

<신한민보>에 묘사된 <초립동>의 의상은 이 작품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초립동>은 오늘날에도 재일 조선학교 무용부의 학생들에 의해 자주 공연되는데 이들의 의상이 지금도 푸른색 바지 저고리에 분홍색 두루막을 입고 초립을 쓴 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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