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의 교육개혁 운동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5월17일 오사카 시립 키가와미나미(木川南) 초등학교의 쿠보 다카시(久保敬) 교장이 마츠이 이치로(松井一郎) 오사카 시장에게 <오사카시 교육행정에 대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교육정책 비판 서한을 발송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소학교 교장이 오사카 시장의 교육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쿠보 시장의 비판은 현실에 기반을 둔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였고, 교육의 궁극적 목표를 잊지 않은 합목적적인 주장으로 들렸다.
쿠보 교장의 항의 서한 발송 사실은 18일 <쿄도통신>이 단신으로 보도했고, 19일에는 <로이터통신>이 받아썼다. 이때까지만 해도 보도 내용은 오사카시의 초,중학교의 코로나 대책으로서의 온라인 수업의 현실성 여부를 둘러싼 것에 국한되었다.
마침내 20일 <아사히신문>은 쿠보 교장의 항의 서한 전문을 공개했고, 그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하는 한편, 마츠이 시장의 반응도 보도했다.
쿠보 교장의 주장은 단순히 ‘대면수업 정상화’에 그친 것이 아니라, ‘과잉 경쟁과 점수 위주의 비인도적 교육관행에 대한 전반적인 비판’임이 드러났고, 이에 대해 마츠이 시장은 ‘현실감각 없는 이상적 주장’이며 ‘조직원이 룰을 무시’한 무도한 행동으로 비난했다.
https://jp.reuters.com/article/idJP2021051801003143
21일 디지털판 <아사히신문>에는 중앙정부 문부과학성의 하기우다 고이치 장관의 논평이 실렸다. 내용은 “지방자치정부의 정책을 존중한다”면서도 “일선 교장의 보고에 귀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이른바 양시론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으면서 중앙정부의 조정 책임을 면하려는 의도로 보였다.
22일 조간신문에 인쇄될 것이 분명한 하기우다 장관의 논평은 오사카 시장이나 쿠보 교장의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쿠보 교장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이로써 쿠보 교장의 교육개혁 주장이 힘을 얻을 기회를 주었고, 중앙정부의 장관이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이 사건은 전국적 이슈가 될 계기를 맞았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fb11429d3463b5af3cf97ca88ae613e16f775b4f
https://news.yahoo.co.jp/articles/e17e8419469b59f5902461447fd1a5f8d18f60a2
https://www.asahi.com/articles/ASP5P42KYP5PUTIL00R.html
한편, 내가 조금 늦게 발견하기는 했지만, 20일 <마이도나 뉴스>라는 다소 생소한 인터넷 매체에 독특한 기사가 올라왔다. 저명한 사회교육가이자 여러 대학의 객원교수를 역임한 미즈타니 오사무 교수가 쿠보 교장을 지지하면서 마츠이 시장이 “오사카시 학교정책을 재고할 것”을 권고하는 기고문을 발표한 것이다.
미즈타니 교수는 요코하마에서 고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밤의 번화가를 순찰하면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가정과 학교로 돌아가도록 설득하곤 했기 때문에 <야간순회 선생님>이라는 별명으로 더 널리 알려진 사회교육가이다.
쿠보 교장이 공개 서한을 발송한 지 불과 5일만에 오사카시의 교육개혁 문제는 문부과학성 장관이 논평을 해야할 정도의 전국적인 이슈가 되었고, 저명한 사회교육가가 입장을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오사카의 교육 문제에서 일본 전체의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655b356c2ffdfe2842def829bd50012615b49ec4
향후 이 사태는 대략 3가지 변수에 따라 들불처럼 번질 것인지, 아니면 사그러들 것인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학부모와 교원들이다. 이들은 미즈타니 교수처럼 오사카 시장보다는 쿠보 교장을 지지하는 입장일 것이다. 다만 그런 의견을 얼마나 공개적으로 표명하거나 행동에 옮길 것인지가 문제이다. 교원과 학부모들이 나서면 이 문제는 폭발적으로 확대되어 교육개혁의 물꼬를 트게 될 것이지만, 이들이 침묵을 지키고 오사카 시정부가 쿠보 교장을 징계하면서 진압에 나설 경우 교육 개혁의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둘째는 코로나 방역상황이다. 오사카는 물론 일본 지역의 코로나 감염 및 확산은 이미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까운 시일 안에 개선될 여지도 없다. 따라서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 악화될수록 정부 입장을 약화시키고 학교와 교원과 학부모들과 일반 시민들을 결집을 도울 것이다.
셋째는 올림픽 강행이다. 일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극성의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개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의료적 위기상황에서 올림픽 같은 국제행사를 치르려면 군과 공무원 뿐 아니라 의료와 학교의 희생이 불가피해진다.
따라서 코로나와 올림픽으로 동시에 학교의 존립기반이 위협받고 헌법이 보장한 인도주의적 교육의 권리가 부정당한다면, 시민과 교원들이 교육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넷째는 쿠보 교장 등의 주도세력이 얼마나 조직화될 것인지도 문제이다. 마츠이 시장이 쿠보 교장을 징계할 것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지만, 내 생각에는 결국 징계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쿠보 교장의 개혁 운동이 교원들을 중심으로 조직화될 것이고, 이는 1989년 한국에서 발생한 <전교조>의 참교육 운동의 길을 밟을 것이다. 한국의 이 운동은 1998년 <전교조>가 합법적 지위를 얻기까지 약 10년 동안 대정부 투쟁을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 조직이 필수적인데, 개인들이 10년 이상 운동을 지속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다섯째, 또 하나의 가능한 변수가 재일 조선학교의 동조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들의 제도적 차별을 겪어온 재일 조선학교가 조직적으로 쿠보 교장의 교육개혁을 지지하고 행동을 개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문제가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 쿠보 교장의 입지는 강화되겠지만, 오사카 시정부와 극우 혐한 세력이 반격할 빌미를 주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쿠보 교장의 문제 제기가 성공하고 확대되려면 교원과 학부모의 움직임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의 동조 여부에 따라서 일반 시민들이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교원-학부모-일반시민들은 유권자들이므로 정치가들은 그들의 주장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먼저 학부모와 교원, 일반 시민의 힘으로 일본 교육개혁의 기반이 마련되고, 그 주도세력이 재일조선학교의 제도적 차별 철폐를 약속한다면, 조선학교도 조직적으로 이에 적극 가담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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