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와 닥터만>의 <카카듀> 자료는 내용은 사뭇 미흡했지만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왈츠와 닥터만>의 창립자 박종만 선생의 열정에 감탄했다. 얼마나 커피를 좋아했으면 카페를 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서울 중심가에서 뚝 떨어진 북한강가로 옮겨 박물관까지 세운단 말인가.
게다가 그는 커피 탐험대라는 조사단을 꾸려서 몇 년째 커피와 관련 지역을 탐방하고 있었고, 한국뿐 아니라 해외 원정까지 다니고 있다는 홍보문을 읽으면서 우리는 경탄했다. 홍보문에 다소 과장이 섞여 있더라도 그런 사업이 시도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이맹수 선생과 주환중 선생은, 우리가 박물관의 <카카듀> 자료를 보충해서 박종만 사장의 노력을 도와주자고 했다. 나도 찬성했다. 우리가 이런 호기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그 무렵 우리가 무용가 최승희 선생의 집 주소를 두 개나 밝혀낸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찾아낸 것은 최승희 선생이 학창시절 거주지였던 체부동의 초가집 주소와 그의 생가였던 수창동의 기와집 주소였다. 리서치를 주로 담당했던 것은 나였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건축가인 주환중 선생이나 은행가인 이맹수 선생이 이런 종류의 자료 조사와 해석 작업에 익숙할 리 없었고, 그것은 문헌 조사와 자료 분석이 생업이었던 나의 일이었다.
새로운 결과가 나올 때마다 나는 이맹수 선생과 주환중 선생에게 보고했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다회를 열고 함께 의논해 나갔다. 나의 보고에 대한 이맹수 선생과 주환중 선생의 피드백은 유용했고, 때로는 신선하리만큼 창의적이어서 내가 조사를 계속하는 데에 새로운 방향을 열어주기도 했다.
최승희 선생의 학창시절 주소를 찾아냈을 때 우리는 구글맵에서 그 위치를 찾아내어 나란히 서촌 어귀의 <토속촌 삼계탕>집을 방문했다. 그 삼계탕 식당의 주차장으로 변해 버린 최승희 선생의 집터를 둘러보고 나서 우리는 한방 삼계탕을 한 그릇씩 먹었다. 성업 중인 <토속촌 삼계탕>의 내부는 시끄러운 편이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현상을 바꾸는 세월의 힘에 대해 잠깐이나마 이야기했던 것 같다.
최승희 선생의 생가 주소를 발견했을 때도 우리는 세종문화회관 뒤편에 모였다. 커피 한잔씩을 사들고 주시경 공원에서 경희궁 자이 아파트단지 사이를 거닐면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최승희 선생의 생가를 머리속으로나마 그려보곤 했다.
최승희 선생의 두 주소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일제강점기에 작성된 <토지조사부>와 <지적원도>를 열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자료를 보려면 복잡한 신청과 대기의 과정을 겪어야 했겠지만, 지금은 모두 인터넷 검색으로 가능하다. 이 자료에 대한 기초지식이 필요하고, 범위를 좁혀 들어가기 위해서 다소 지루한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어쨌든 그 자료는 공개되어 있고 어디서나 가용했다. 내 연구실의 책상 앞을 떠나지 않고도 80여년 전의 자료를 검색해서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법원의 <등기부>도 도움이 되었다. 이 자료를 보기 위해서는 해당 법원에 가서 자료 신청을 해야 했지만,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10년대와 1920년대의 경성 주소지를 찾아낼 수 있다는데, 그 정도의 수고를 지불하는 것은 오히려 싼 편이었다.
<카카듀>를 추가로 조사해 박용만 사장의 노력을 돕기로 우리끼리 결정한 그날이 우리 모임 <카카듀를 찾아서>가 시작된 날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1920년대와 30년대의 커피 관련 자료를 찾아다녔다. 인터넷 검색은 기본이었고 수시로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방문했다. 한국의 커피사를 다룬 책이면 닥치는 대로 사서 읽었다. 영화감독 이경손을 조사하기 위해 방콕을 세 차례나 방문하기도 했다.
새로운 사실이 나올 때마다 나는 <카카듀를 찾아서>를 소집했고, 우리는 소박한 식사와 긴 다회를 통해 새로 발견된 사실을 이모저모로 곱씹으며 뿌듯해 하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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