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효고(兵庫)현에 <무쿠게회(むくげの会)>라는 단체가 있다. <효고조선관계연구회>와 함께 대표적인 한국관련 연구단체이다. ‘무쿠게’는 무궁화(無窮花)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은 것이니, 이 단체가 한국에 우호적인 모임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미디어에 전해지는 뉴스에는 혐한단체 이야기가 많지만, 사실 일본에는 친한 단체도 적지 않다. <무쿠게회>의 연구자들은 대부분 한일 식민지 강점시기를 불행한 시기로 여기고, 과거에 대한 사과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상생과 협력의 미래를 열기 바란다. 일본 주류 분위기와 거리가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고 잘 들리지는 않지만, 그들도 힘껏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나는 <무쿠게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승희 조선무용> 연구와 <재일 조선학교> 후원, 그리고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를 조사하면서 <무쿠게회> 회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그 월간 소식지 <무쿠게통신>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2022년 3월27일자 <무쿠게통신>에 부고가 실렸다. 콘도 도미오(近藤富男) 선생의 타계를 알리는 히다 유이치(飛田雄一) 선생의 추도문이었다. 이 글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콘도 도미오씨가 지난 2월10일 사망했다. 1969년 3월말 고베대학 입학 시에 신입생으로 처음 만난 것이 그였다. 나는 농대 원예농학과였고, 그는 축산학과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콘도 도미오 선생이 타계하셨다는 소식이나 명문 고베(神戶)대학 출신이셨다는 소개 때문이 아니었다. 타계 소식은 정세화 선생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고, 히다 선생과 콘도 선생이 신다이(神大) 졸업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고베대학은 교토대학, 오사카대학과 함께 일본 간사이(關西) 3대 국립대학이며, 일본 전체에서도 톱10에 드는 명문대학이다.
그러나 콘도 도미오 선생의 전공이 ‘축산학’이었다는 점은 짐작도 못했다. 그는 평생을 국어, 즉 일본어 교사로 살아오신 분이었다. 1974년부터 다카라즈카 시립 아쿠라(安倉)중학교의 일본어 교사였고, 은퇴하신 뒤에도 코리아국제학교에서도 일본어 교사로 근무하셨다. 그래서 나는 콘도 선생의 전공이 당연히 일본어 혹은 일본문학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오해는 콘도 도미오 선생의 도움을 받으면서 더 굳어졌다. 무용가 최승희 선생에 관한 1930년대 일본문헌을 조사하다보면 현대 일본어와 표현이 다르거나, 심지어 철자가 다른 말들도 자주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콘도 선생이 명쾌하게 풀어주셨다. 그는 현대 일본어뿐 아니라 고문에도 능하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분의 학부 전공이 ‘축산학’이라니...
1970년대 초에 ‘축산학’을 전공하셨으니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예농학’을 전공하시고 한국사 연구자가 되신 히다 유이치 선생도 마찬가지다. 이분들이 명문 국립대학에서 유망한 분야를 전공하시고도 한국관련 학자와 활동가가 되신 이유가 궁금했다. 콘도 선생이 계신다면 당장 문자로 여쭤 보았을 텐데, 이젠 대답을 직접 들을 수가 없다.
콘도 선생은 <무쿠게회>의 회원들과 늘 가깝게 지내셨지만, 회원으로 가입하신 것은 2018년 11월로 최근의 일이다. 콘도 선생은 <무쿠게회> 가입 전부터 <무쿠게통신>에 글을 기고하셨는데, 첫 글이 부산과 비무장지대 방문기이다. 일제 강점기의 유적을 살피고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공감하는 글이다. 콘도 선생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무쿠게통신>에 기고한 학술적인 글이 2개 있다. 하나는 2019년에 5회에 걸쳐 연재한 <한자와 한글>이라는 글이다. 이 글의 부제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일본어를 만들기 위하여”이다. 한자병용을 버리고 한글전용으로 돌아선 한국어처럼 일본어도 한자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평생 일본어 교사였던 분의 견해이니 일본 어문학자들도 귀담아들을 일이다.
다른 하나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9회에 걸쳐 기고한 <서울시와 경기도의 친환경 무상급식>이라는 글이다. 한국의 학교 급식이 일반복지를 위해 ‘무상’으로, 시민 건강과 농가 부양을 위해 ‘친환경 유기농’으로 실시되는 것을 높이 평가하신 글인데, 유전자 조작이 없는 유기농 농축산물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축산학 전공자의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계속)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콘도 도미오 선생님을 생각하며 (2) <팀아이>의 창립자 (0) | 2022.06.26 |
---|---|
近藤富男先生を思いながら(1): <むくげ通信>の訃報 (0) | 2022.06.25 |
[다카라즈카 추도비] 20-5. 신문기사와 매장인허증 (0) | 2022.02.05 |
[다카라즈카 추도비] 20-4. 조선인 추도비의 비문 (0) | 2022.01.27 |
[다카라즈카 추도비] 20-3. <팀아이> 출범과 2차 <무용신> 캠페인 (0) | 2022.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