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중 선생님 인터뷰를 계기로, 정병호 선생이 관람했던 최승희 공연이 어떤 것이었는지 찾아가는 중이다. 지난 글에서는 19414월의 경성공연 레퍼토리를 살폈다. 이는 만3년의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최승희 선생이, 19412월 도쿄의 가부키자(歌舞技座)에서 일본 첫 공연을 가진 후, 그해 4월 조선을 방문해 가졌던 조선 첫 공연이었다.

 

그러나 그해(1941) 4월의 경성 부민관 공연의 레퍼토리에서는 정병호 선생이 관람했다는 3개의 작품이 제목 그대로 발견되지 않았다. 작품의 제목과 내용이 다른 경우도 있고, 또 같은 작품이 다른 제목으로 소개된 경우도 있으므로 더 자세한 조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19422월 경성공연의 레퍼토리를 먼저 살피기로 하자. 1942218일자 <매일신보(4)>는 최승희의 경성공연을 소개하면서 레퍼토리도 함께 보도했다. 다소 길지만 기록을 위해서 기사의 전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제목) 신면목이 약여(躍如)한 최승희의 동양무, (부제) 다채한 프로로 매일밤(連夜) 성황, (내용) 일본의 고전음악을 중심으로 하고 동양적인 무용으로 일대 전환을 하여 새방향을 보인 최승희 여사는 동경 중앙공연에서 절찬과 지지를 얻었거니와 다시 몇 가지 향토의 춤을 가()하여 기보(旣報)한 바와 같이 이번 군사보급협회의 주최로서 전선공연을 가지게 된바 예정대로 경성공연이 16일부터 부민관에서 초야의 공연이 개막이 되었다.

 

감격에 사무친 xxxx의 기쁨으로 전 시가는 축하행사로 물 끓듯 하는 이날 밤 장내는 승전의 엄숙한 분위기에 휩싸여 춤추는 최여사의 포즈의 연결은 힘과 미와 건설에의 약동하는 동양무용의 진가를 살리었다. 이번 무용의 특색은 이전의 구미(歐米)적인 리즘이 전연 자취를 감추고 동양적인 전아한 리즘이 최여사의 원숙한 무기(舞技)의 조화를 얻어 일반 동호자와 관중에게 배가의 호평과 절찬을 받았다. 이제 당야(當夜)의 프로그람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1) 신전의 무(神殿, 일본의 의식무용의 장중한 형식미를 표현한 것.), (2) 화랑의 춤(화려하고 명랑한 청춘무), (3) 동양적 리즘(근대적 리즘과 동작), (4) 추심(追心, 능악(能樂)의 모성애 작품 중에서 취재, 죽은 내 자식의 모양을 추억하여 슬퍼하며 원통해하는 그 마음과 자태...), (5) 세 가지 전통 리즘 (조선의 고전무용의 세 가지 기본적 동작을 체계화해서 창작한 것.), (6) 칠석(七夕)춤형식(내지의 칠석춤의 전형적 수법을 취하여 무용화한 것.)

 

2. (1) 무혼(武魂, 우리 충?에 바치는 춤, 고래(古來)의 무사혼을 표현한 것.), (2) (8)보살의도(菩薩, () 가무보살(歌舞菩薩, 겸창鎌倉시대의 <25보살래영도>에서 취재한 것), () 보현보살(普賢菩薩, 헤이안시대(平安朝)의 명화 <보현보살(普賢菩薩)>에서 취재, 무용화한 것), (3) 화립(花笠)의 춤(鄕土舞踊), (4) 칠석야(七夕夜, <牽牛織女>傳物에서 취재), (5) 초립동(草笠童, 소년 신랑의 희희낙락한 모양), (6) 인도풍의 춤(인도무용의 수법), (7) 사죽(四竹)(류큐琉球무용의 대표적인 것), (8) 즉훙무(卽興舞, 가야금 산조의 변화에 주제를 취한 것). (사진은 최승희).”

 

이 공연의 발표작품 목록에는 <초립동>이 등장했다. <보살춤>이라는 제목은 없지만 <보살도(菩薩圖)>라는 제목 아래 <가무보살><보현보살>이라는 소제목이 나온다. 아마도 정병호 선생이 이 공연을 보았다면, 이 두 작품 모두, 혹은 그 중의 하나를 <보살춤>이라고 기억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에헤야 노아라>는 이 작품목록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이 작품목록이 중요한 것은 경성 부민관 공연 이후에 이어진 전조선 순회공연에서도 이 작품들이 상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승희 선생은 그의 스승 이시이 바쿠의 선례를 따라서, 먼저 수도 경성에서 공연을 가진 이후 그 레퍼토리를 가지고 지방 순회공연을 단행하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1부의 6작품, 2부의 8작품, 14작품으로 이뤄진 이 레퍼토리는 4월말부터 5말까지 약2개월에 걸쳐서 조선의 18개 도시 순회공연에서도 상연되었을 것이다. 다만 모든 지방 공연에서 이 14개 작품을 전부 공연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현지 사정에 맞추어 작품의 숫자와 순서를 조정했을 가능성은 있다.

 

따라서 만일 정병호 선생이 이 공연을 관람했던 것이라면, 경성에서나 혹은 광주에서 이 공연을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시사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