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경중 선생님 인터뷰를 계기로 (2) 정병호 선생이 관람했던 (3) 최승희 공연이 어떤 공연이었는지 살펴보다가, (4) 적어도 1941년의 4월의 최승희 경성공연은 “조선음악으로 반주되는 독무 중심의 조선무용” 작품들이 발표되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즈음 일제 군국주의는 강경해 지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일본 열도뿐 아니라 식민지 조선반도에까지 밀어닥쳤다. 일제 군국주의는 1931년 만주침략으로부터 시작되어 1937년 중국침략과 함께 강성화되던 중 1941년 12월7일의 미국 진주만 공습 이후 극단으로 치달았다.
일제 군국주의가 극단화되면서 조선의 정치, 산업, 사회 부문은 물론 문화 분야에까지 그 영향이 미쳤다. 심지어 일제가 미국과 전쟁을 시작한 1941년 12월부터는 다방에서 영국과 미국 등의 “적국(敵國)의 노래”를 틀어서는 안 된다고 금지하기 시작했다. 1941년 12월30일자 <매일신보(4면)>는 이 소식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다방가에 흐르는 레코드의 멜로디에도 대동아 전쟁 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되기로 되었다. 레코드와 차를 가지고 손님을 끄는 다방가에는 얼마 전부터 오후 다섯시가 되기 전에는 절대로 레코드를 걸어서는 안된다고 경성식당업조합으로부터 통첩을 띄워서 현재 그대로 낮 동안에는 음향 없는 다방으로 실행하여 오는 터인데,
"대동아 전쟁의 발발과 함께 다시 이를 강화하여 다섯시 이전에라도 총후의 사기를 돋구는 우리나라의 군가만은 걸어도 좋으나 다섯시 이후라도 영국, 미국등 적국의 레코드 및 그 나라에서 취입한 것 또는 그 나라 작곡의 것은 일체로 걸어서는 안되기로 되었다. 그리고 독일, 이태리 등 추축국가에서 취입한 것 또는 작곡한 것이라도 시국에 알맞지 않는 경조부박한 것은 또한 걸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것이라 할지라도 회상적이요 감상적인 유행가 따위는 걸어서 안되기로 되었는데 다방이나 식당, 빠, 카페 업자는 현재 가지고 있는 레코드 중에 미심한 것이 있다면 이런 것은 어떨까 하고 한번 소관 경찰서로 가지고 가서 알아본 연후에 걸어야 한다고 동조합에서는 업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다방의 음악까지 간섭하기 시작했으니 무대예술 공연이나 영화 상영이 검열의 대상이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고, 이는 최승희의 무용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최승희 선생은 경성 공연을 위해 1941년 3월27일 특급열차 아카츠키 편으로 오후 2시5분 경성역에 도착했는데, 그 길로 남산의 조선신궁에 참배를 해야 했고, 29일 오전에는 조선군사령부를 방문했다. 예술가가 군사령부를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지만, 당시 조선의 공연 허가권을 군사령부가 갖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공연 허가를 얻기 위해 최승희는 2천원의 국방헌금을 납부해야 했다. 1941년의 일본돈 2천원은 오늘날 약 3만달러(임금 기준), 즉 약 4천만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당시 2천석 규모의 부민관 공연이 만석일 경우, 1회 공연의 경비를 제외한 수익이 대략 2천원 내외였다. 따라서 5일동안의 공연 허가를 받기 위해 하루 공연 수익을 미리 상납해야 했던 것이다. 이 헌금이 표면상으로는 강제되지 않았는지 몰라도, 이런 ‘기름칠’을 하지 않았다면 최승희의 경성공연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지도 몰랐다.
기름칠의 효과는 컸다. 1941년 3월29일자 <조선신문(4면)>에 따르면 이 2천원의 국방헌금의 댓가로 전조선 17개 도시에서의 공연 허가를 얻어낸 것이다. 4월2-6일 경성 공연, 4월6-15일 사이의 북선(北鮮)지역 5개도시(함흥, 청진, 성진, 흥남, 원산) 공연, 15-20일 사이의 신의주를 비롯한 서선(西鮮)지역 4개 도시와 인천 공연, 그리고 20-30일 사이의 부산을 비롯한 남선(南鮮)지역 6개도시의 공연 허가가 바로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최승희는 조선신사를 참배하고 조선군사령부를 방문해 거액의 국방헌금을 납부한 댓가로 경성을 시작으로 전조선의 17개 도시에서 “조선음악을 반주로 하는 조선무용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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