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헤야 노아라>는 최승희 선생의 최초이자 최고 히트 작품이었다. 조선 노인을 희화화한 이시이 바쿠의 작품 <캐리커처(1926)>를 불쾌하게 여겨 <우리의 캐리커처(1931)>를 따로 안무했던 것이 발단이었다. 이 작품은 조선에서도 인기를 끌었지만, 제목을 <에헤야 노아라>로 바꾸어 1933년 5월20일 도쿄 일본청년관에서 일본 초연된 이후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에헤야 노아라>는 최승희가 <나의 자서전(1936)>에서 ‘부친으로부터 배운 굿거리 춤’이라고 서술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부친 최준현의 <굿거리 춤>과 스승의 <캐리커처>를 비판하기 위해 안무한 <우리의 캐리커처>가 합쳐진 작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에헤야 노아라>는 곧 일본에서 유명해졌고, 최승희 조선무용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서 독립하기 전인 1933년 10월22일 최승희는 <이시이바쿠 무용단 가을공연>에서도 <에헤야 노아라>를 상연했고, 1934년 9월20일 도쿄에서 개최한 첫 개인 발표회 <제1회 도쿄공연>에서도 상연됐다. 1935년 10월25-27일의 간사이(오사카, 고베, 오카야마) 공연과 1935년 11월19일의 다카라즈카(寶塚) 공연, 11월29일의 후쿠이(福井) 공연에서도 상연됐다.
이 작품의 상연은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1936년 7월3일의 타이완 타이페이 공연, 1937년 3월29일의 숙명여전 건립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경성 부민관 공연, 1938년 11월6일의 미국 뉴욕 길드극장 공연에서도 <에헤야 노아라>가 상연됐다.
그러나 의아한 점이 있었다. <에헤야 노아라>가 1937년까지는 활발하게 공연되었지만 세계 순회공연이 시작되자 그의 공연 레퍼토리에서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후 이 작품이 다시 공연된 것은 최승희가 자신의 무용 경력을 총결산하는 1942년 12월6일의 도쿄 독무공연에서였다. 그렇게 인기 있는 대표작품을 어째서 더 이상 공연하지 않았을까?
사실 <에헤야 노아라>의 공연이 중단된 것은 아니었다. 세계 순회공연을 준비하면서 최승희는 이 작품을 다시 한 번 개량해 이름을 바꾸었는데, 새 제목은 <신노심불로(身老心不老)>였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노심불로>가 초연된 것은 1937년 2월7일의 오사카 공연이었다. 이어서 2월11일 후쿠이 공연, 2월16일 교토 공연, 2월27일 나고야 공연 등에서도 시험 삼아 공연되었고, 3월31일에는 이왕직 본청이 주최한 경성의 윤황후 위로 공연에서도 상연되었다.
<신노심불로>는 해외에서 본격적으로 상연되었다. 1938년 1월의 샌프란시스코 공연과 2월의 LA 공연에서는 <신노심불로>가 발표되지 않았지만, 11월6일 뉴욕 길드극장 공연, 1939년 1월31일의 파리 살플레옐 극장 공연, 2월6일 브뤼셀의 팔레드보자르 극장 공연, 4월2일 독일 뒤스부르크 공연, 4월17일 네덜란드 덴하크 공연, 5월10일 브뤼셀 2차 공연, 6월15일 파리 샤이오 극장 공연, 6월27일 덴하크 쿠어짤 극장 공연에서 잇달아 공연되었다.
이후 미국 공연과 남미 공연에서도 <신노심불로>는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였고, 마침내 세계 순회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온 후 처음 가졌던 1941년 2월22일의 도쿄 가부키좌 귀조공연에서도 상연되었다.
<신노심불로>의 주인공은 <우리의 캐리커쳐>와 <에헤야 노아라>에서처럼 흰 조선 의상을 입은 조선 노인이다. 파리 살플레옐 공연 프로그램에는 <신노심불로>가 “한국 노인이 앉아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다가 갑자기 청년처럼 춤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야위고 힘없는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실망하여 다시 노인으로 되돌아온다”고 해설되어 있다. 이 짧은 서술로 미루어 볼 때 <신노심불로>는 <우리의 캐리커처>와 <에헤야 노아라>로 이어졌던 우스꽝스런 몸짓의 무용에다가 새로운 스토리를 가미해 구성력을 높인 차원 높은 작품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캐리커처(1931)>와 <에헤야 노아라(1933)>, <신노심불로(1937)>를 발전의 연속선에 놓인 동일한 작품으로 본다면, 이는 최승희가 무용유학을 끝내고 공연 활동을 시작한 이래 10년 이상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공연된 유일한 레퍼토리였던 셈이다. (2022/8/28,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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