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극장의 초기역사 시론 (by 조정희, 최승희 연구가, 예술사회학)

 

I. 서론

 

나주극장은 건물이 현존하는 나주시 유일의 근대극장이다. 1930년대에 설립되어 1950년대에 개축된 나주극장은 약 1세기 동안 영화와 공연, 그리고 각종 지역 행사를 유치해 나주시와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연예와 유흥과 예술을 제공하던 극장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통하여 나주극장은 나주 유일의 상설관이었고, 더구나 설립자가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시민사회와 학계, 문화예술 행정당국의 관심을 끌었다. 지금은 나주시가 나주극장 건물을 매입해 문화재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나주극장은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 초기 역사는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그 설립자가 변사 출신의 성방명(成邦明)이라는 점은 알려져 있지만, 그가 나주극장을 언제 설립했는지, 그가 처음 설립한 극장의 위치와 크기가 어떠했으며, 어떤 영화를 상영하고 어떤 공연을 상연했는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일차적으로 나주극장에 대한 조사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계의 연구는 단행본 <호남의 극장문화사(위경혜, 2007)>5쪽 남짓 서술된 것이 전부이고, 연구논문으로는 최근에 발표된 나주(羅州)지역 극장의 생성과 역사적 전개에 관한 연구(김남석, 2022, <인문학연구 32>)”가 유일하다.

 

나주극장에 대한 연구가 희소한 것은 일차 자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 자리 수를 넘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신문기사가 문헌 증거의 전부이고, 그밖에는 2000년대 이후에 이루어진 구술자료가 약간 있을 뿐이다. 더구나 이 구술 자료조차 너무 뒤늦게 수집된 것이어서 1950년대 이전의 나주극장에 대한 회고 내용은 거의 없다.

 

 

필자가 나주극장의 초기역사에 관심 갖게 된 것은 최승희 무용공연 조사 때문이었다. 조선무용가 최승희의 공연을 조사해 온 필자는 2017년의 유럽공연 조사, 2018년의 미국공연 조사, 2019-2020년의 일본공연 조사에 뒤이어 20203월부터 국내공연을 조사했다. 코로나 때문에 남미공연 조사를 단행하지 못한 채, 일단 국내 조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전남지역의 최승희 공연을 조사하던 중, 필자는 목포와 광주, 벌교와 순천과 여수에서 최승희의 무용공연이 이뤄졌다는 점을 발굴하거나 확인했다. 벌교공연은 과거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 발견된 공연이었기에 그 발견의 의의는 사뭇 컸다.

 

벌교공연을 발굴한 직후 필자는 1930년대에 더 큰 도시였던 나주에서도 최승희의 무용공연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나주극장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조사 결과 최승희의 나주극장 공연은 없었던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려야했지만, 나주 조사를 도와주신 분들의 요청으로 나주극장에 대한 조사는 계속했다.

 

 

3개월의 조사를 결산하는 이 글에서는 그동안 취약했던 나주극장의 초기역사, 즉 해방 이전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발굴하는 데에 일차적 관심을 두었다. 이글을 위해서는 기존 문헌이 재검토되고, 관련 문헌이 새로 발굴되기도 했지만, 현지 원로와 전문가들의 면접이 가장 중요한 자료를 제공했다.

 

특히 1백세를 넘어 장수하시는 이학동 화백과 나주 문화원장을 오래 역임하신 박경중 원장님을 각각 두 차례씩 면접할 수 있었고, 나주극장의 설립자이신 성방명씨의 4남 성순재씨를 만나 면접하고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질문을 드릴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자리를 빌어 세 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또 나주극장의 문헌 조사와 면접 조사를 위해 나주 실학강독회와 나주학회가 큰 도움을 주었다. 특히 실학강독회의 임재택, 김순희, 최현삼 선생, 그리고 나주학회의 정찬용 선생의 참여와 도움에 감사드린다. 또 문헌자료를 자문해 주신 나주시청의 김종순 과장과 나주 문화계 원로 면접을 주선해 주신 윤지향 팀장께도 감사드린다. (2022/10/3, 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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