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시립도서관이 풍부한 향토자료를 소장하고 있었지만,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희생자들의 연고를 찾기 위해서는 그 대부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본의 신문들이 이미 윤길문(尹吉文), 오이근(吳伊根)씨의 연고지가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임을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일은 고성 내에서 그들의 구체적인 연고지를 문헌이나 증언으로 확인하면 되고, 혹시 가족이나 친족 등의 연고자를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강릉 조사에서는 경주김씨 수은공파 족보를 통해 김병순(金炳順)씨의 연고지를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고성에서도 윤길문, 오이근씨의 족보 기록을 찾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관심사였다.
그러나 통영 조사는 사정이 달랐다. 일본에는 남익삼씨가 통영 출신임을 보여주는 기록이 없었다. 필자는 남익삼씨의 매장인허증에 나타난 불완전한 조선 주소를 바탕으로 그가 통영 출신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지만, 그 추측은 문헌이나 증언으로 뒷받침되어야 했다.
남익삼씨는 1915년 고베수도공사 중에 터널 낙반사고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을 매장하기 위해 니시타니(西谷) 촌사무소에서 발행한 매장인허증에 그의 조선 주소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주소는 초서체 한자로 쓰였기 때문에 읽기 쉽지 않았고, 간신히 읽어낸 주소도 당시의 행정구역과 일치하지 않았다.
매장인허증에 기록된 남익삼씨의 주소를 읽히는 대로 옮기면 “조선 중청도 춘원우 연북면 선삼촌(朝鮮 中淸道 春元右 連北面 先三村)”이다. 그러나 이 주소에는 문제가 많았다.
우선 당시 조선에는 ‘중청도(中淸道)’라는 행정구역이 없었다. 가장 근접한 것이 ‘충청도(忠淸道)’이겠으나 이 역시 ‘충청남도’이거나 ‘충청북도’로 나누어 써야했다. 따라서 이 주소는 당시의 조선 행정구역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 누군가 불러준 대로 받아썼던 것으로 보인다.
‘춘원우(春元右)’라는 기록도 문제다. ‘우(右)’라는 행정단위는 조선에 없었다. 행정단위의 순서로 보면 ‘도(道)’ 다음에는 ‘군(郡)’이 나와야 하는 자리이기는 하다. 또 춘원‘우’ 다음에 연북‘면’이 나왔기 때문에, ‘춘원우’는 ‘춘원군’으로 읽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의해 이루어진 행정구역 개편 전후를 모두 살펴도,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에는 물론 조선 전역에 ‘춘원군’이라는 지명은 없었다.
‘춘원우’ 다음의 ‘연북면(面)’과 ‘선삼촌(村)’도 마찬가지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의 전과 후를 통틀어 전국 13도의 모든 행정구역 명칭을 조사해도 ‘연북면’과 ‘선삼촌’ 혹은 ‘선삼리’라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역시 잘못된 표기임에 틀림없었다.
즉, 남익삼씨의 조선 주소가 엉터리였다는 것인데, 이런 일이 왜 생겼는지 궁금했다. 매장인허증에 따르면 사망 당시 37세였던 남익삼씨의 정식 고용 기록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식 취업 자료가 있었다면 매장인허증에도 정확한 주소와 생년월일이 기록되었을 것이다.
1910년대 초반에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 중에는 정식 취업 절차를 따라 이주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일용직이나 막노동 일자리를 찾아간 사람들은 대개 사전 고용 절차 없이 무작정 도항했거나 밀항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일본에 도착해 철도나 하천 공사, 석탄과 철광석 등의 탄광에서 막노동 일자리를 찾곤 했다. 그럴 경우 고용 기록은 물론 신상 기록조차 작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수도공사에 투입됐던 남익삼씨도 그런 경우였을 것이다. 그를 비공식적으로 고용한 기업은 물론 그가 거주했던 지역의 말단 행정기관에도 남익삼씨의 신상 정보는 구비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남익삼씨가 사망하고 그의 매장인허증을 발행해야 했을 때 촌사무소는 조선인 동료들의 전언에 의존했을 것이고, 동료들이 남익삼씨의 고향을 잘 몰랐다면 그의 주소를 제대로 기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의 행정구역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을 촌사무소의 서기가 이를 바로잡을 가능성도 없었을 것이다. 매장인허증의 남익삼씨 주소가 정확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2022/8/29, 조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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