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무용신> 방문단이 다카라즈카를 방문하기로 한 것은 뜻 깊은 일입니다. 그것은 다카라즈카가 일본의 국민 휴양지, 가극의 도시, 만화-애니메이션의 탄생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20세기 초부터 조선인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는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 점은 재일조선인 향토사학자 정홍영(鄭鴻永, 1929-2000) 선생의 책 제목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1997년에 출판된 이 책의 제목은 <가극의 거리의 또 다른 역사>이고 부제는 <다카라즈카와 조선인>입니다. ‘가극의 거리란 소녀가극단의 무대인 다카라즈카를 가리키지만 이 지역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20세기 초반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갖가지 토목공사에 참여했던 조선인의 고난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제가 다카라즈카 중앙도서관을 방문해 <다카라즈카 시사>와 각종 향토역사서와 화보사진집을 조사했지만, 19세기말 메이지 시대부터 시작된 이 지역의 근대화 과정에 조선인 노동자들이 대거 참여했던 사실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정홍영 선생이 말한 또 다른 역사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것이지요.

 

정홍영 선생은 1983년부터 단짝 조사연구 파트너인 교사 출신의 사회활동가 콘도 도미오(近藤富男, 1950-2022) 선생과 함께 다카라즈카의 조선인의 흔적을 샅샅이 조사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 결과가 <가극의 거리의 또 다른 역사: 다카라즈카와 조선인(1997)>입니다.

 

이 책은 조사연구를 주도한 정홍영 선생의 이름으로 출판되었지만, 이 책이 나오기까지 문헌조사와 답사, 원고 집필과 교정의 모든 단계에서 콘도 도미오 선생의 조력이 절대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콘도 도미오 선생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 사모님과 아드님께서 콘도 도미오 선생이 생전에 모으시고 작업하셨던 자료들을 제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삿짐용 큰 상자 2개에 가득 담긴 자료 중에는 <가극의 도시의 또 다른 역사>의 교정 원고도 있었고, 그 책을 집필하는 데에 필요했던 자료들이 모두 담겨있었습니다. 게다가 콘도 도미오 선생께서 사용하셨던 컴퓨터에는 아직도 수천 개의 파일들이 남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콘도 도미오 선생님의 가족들은 제게 그 자료와 파일들을 조사하고 그 결과를 콘도 도미오 선생님의 이름을 위해 출판해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지난 방문 때에는 그 일에 착수할 준비를 갖추지 못했었지만, 이번 <우리학교무용신> 방문 기간에 그 자료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정리하고 조사할 계획을 세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극의 거리의 또 다른 역사>의 앞표지 바로 안쪽에는 지도가 한 장 그려져 있습니다. 지도의 제목은 다카라즈카의 조선인 흔적 지도입니다. 거기에는 다카라즈카 역을 중심으로 사방에 조선인들이 참여했던 각종 공사 현장과 거주했던 주거지역, 그리고 조선인들이 희생당했던 각종 사건과 사고들이 그림과 함께 빼곡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붙여진 번호를 보면 모두 35건에 달하는 내용이 이 지도 한 장에 축약되어 있습니다.

 

 

다카라즈카의 조선인 관련 사건과 사고 중에 타마세의 조선인 희생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번호가 5번으로 매겨진 조선인매장지가 바로 그곳입니다. 금번 <우리학교무용신> 방문단은 이곳을 방문해서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도하고, 이들을 위해 1백년 이상 제사를 지내오신 타마세 부녀회원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게 됩니다.

 

우리가 찾아갈 또 한 곳은 <다카라즈카의 조선인 흔적 지도>10다이너마이트 사고로 조선인 2명이 즉사한 장소83호터널9번의 수도 보선공사에 참여한 조선인 함바지역입니다.

 

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 사고로 즉사한 조선인 2이란, 1929년에 후쿠치야마선 철도 공사에서 사망한 윤길문, 오이근씨입니다. 이 두 사람과 타마세의 희생자 세 사람을 함께 기리는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도 바로 이 지역에 세워져 있습니다. <우리학교무용신> 방문단은 이곳도 방문할 예정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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