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15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의 미진프라자 스페이스22에서는 재일 사진작가 조지현(曺智鉉, 1938~2016) 선생의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전시회 제목은 <이카이노(猪飼野)>, 부제는 “일본 속 작은 제주”였습니다.
쿠다라노 시기(4-8세기)에 시작되어 이카이노 시기(1920년대-1973)를 거쳐 이쿠노(1973-오늘날) 시기로 이어지는 이 지역 조선인사에서 두 번째 시기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들입니다.
전시회에서 관람객의 눈을 가장 먼저 사로잡은 것은 조선시장, 즉 지금의 코리아타운 상가지역에 걸렸던 현수막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총련 측과 민단 측의 홍보전이 치열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시회의 기획자 안해룡 선생도 YT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의 조선시장을 “분단선 없는 분단의 거리”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데올로기 대결의 모습을 제쳐놓더라도 조지현 선생의 사진들은 1960년대 후반 이카이노 조선인 마을과 조선시장의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 생활했던 재일조선인들의 신산했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앞글에서 보았던 여러 이카이노 조선인 작가들이 언어로 서술했던 내용을 조지현 선생은 시각적으로 강조해 주고 있었습니다.
조각배를 타고 히라노카와 강바닥을 뒤지며 고철을 건지는 남성들의 모습, 천변 난간에 줄을 매고 빨래를 너는 여인의 모습, 빈 드럼통을 놀이터 삼거나 골목에서 구슬을 치는 소년들의 모습, 한복으로 성장하고 나들이 하는 아낙네들의 모습, 짐을 잔뜩 실은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있는 노인의 모습, ....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남자에게 해물을 사라고 외치는 좌판 할머니의 모습, 일본식 교복을 입고 버스를 타는 남학생들과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학생들의 모습 등은 1960년대 이카이노의 조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전합니다.
이카이노에서도 조지현 선생의 사진전이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2016년 11월22일부터 6일간 이쿠노구의 미유키모리 초등학교에서였습니다. 조지현 선생의 장녀 조지혜(曺智恵)씨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약 4,000장의 흑백사진을 발견, 그중에서 50점을 선택해 패널로 전시했고, 그밖에 수십 장의 사진을 필름으로 만들어 영상전시도 곁들였습니다.
12월7일자 <민단신문>은 이 전시회의 사진들을 “민족의상을 입고 골목을 유유히 걷는 여성들, 마늘과 건어와 배추가 수북이 쌓인 조선시장, 함박웃음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할머니의 옆모습 등 모두 재일동포의 역사를 고스란히 전하는 것들”이라고 전하면서 “전시회장을 찾은 시민들은 ‘저 사진 그립다’ 며 눈을 가까이 대고 감격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버지의 작품 전시회를 개최한 조지혜씨도 인터뷰를 통해 “그 어려웠던 시절, 고생하면서도 씩씩하게 살아온 동포들의 사진을 보면 당시의 역사,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서 “재일동포들이 부조리와 차별 속에서도 열심히 산 증거로 보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전시회의 제목은 <추모-조지현 이카이노사진전>이었는데 이는 조지현 선생이 2016년 봄 77세를 일기로 타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1938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10세에 아버지가 살고 있던 이카이노로 이주한 조지현씨는 27세부터 반세기동안 자신의 “제2의 고향” 이카이노의 모습을 촬영했습니다. 그가 찍은 이카이노 사진은 5천여장에 이른다고 합니다.
조지현 선생은 생전에 자신의 작품을 모아 <사진집 이카이노-추억의1960년대(2003, 도쿄, 신칸샤)>를 출판한 바 있습니다. 이카이노의 한 일본인 주민은 이쿠노 도서관에서 이 사진집에 실린 조지현 선생의 하리노카와 천변 사진에서 40여년 전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블로그에 당시를 회고하는 포스팅을 했더군요.
힘들고 어려웠던 이카이노 시절을 견뎌낸 재일조선인 동포들도 존경스럽습니다만, 이같은 모습을 글과 사진으로 후세에 남긴 분들의 노력에는 진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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