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 공원에서 점심식사와 버스킹, 그리고 <님을 위한 행진곡> 합창을 마친 방문단 일행은 버스에 올라 다시 크라스키노로 향했습니다. 시내를 중심으로 반대편에 위치한 크라스키노 전망대를 방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전망대는 크라스키노 북동쪽 외곽의 크레스토바야(Крестовая) 언덕 위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다지 높은 언덕은 아니지만 인근지역이 모두 평지이거나 바다이고, 사방이 탁 트여있어서 조망이 좋습니다. 언덕 위에는 기념상이 세워져 있는데, 동상 받침대의 상단에는 하산의 영웅들(Героев Хасана)”이라는 헌사가 새겨진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장고봉 전투라고도 알려진 하산호 전투는 1938년 오늘날 조선과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이 맞닿은 하산지역의 높이 150미터의 고지 장고봉에서 벌어진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 벌어진 국경분쟁에서 러시아군이 일본군을 격퇴한 전투를 가리킵니다. 러시아가 이 전투를 하산호 전투라고 부르는 것은 장고봉(сопке Заозерной)이 하산 호수(озера Хасан) 바로 옆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하산 장고봉은 크라스키노의 크레스토바야 언덕에서 남서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그 전투의 기념상이 크라스키노에 세워진 것일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구글링을 통해 이 전투 기념비는 원래 하산에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크라스키노에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념상은 196884일 하산호 전투 승전 30주년을 기념해 이곳에 세워졌는데, 콘크리트 받침대 위에 세워진 높이 17미터, 무게 40톤의 거대한 조각상은 핀디쉬-크란디에프스키(А.В. Файндыш-Крандиевский)의 작품이고, 기념상의 건축은 바리즈(М.О. Бариз)와 콜피나(А.Я. Колпина)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조각상은 두 손으로 깃발을 치켜든 군인의 모습인데, 이 조각상은 레닌그라드에서 제작되어 이곳으로 옮겨졌고, 조각상을 이동시키는 데에 두 대의 트랙터가 동원되었고, 이를 받침대에 세우기 위해서 블라디보스톡에서 포시예트 항구로 공수한 특수 크레인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러시아가 이 기념상을 건립하는 데에 매우 정성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산호 전투의 승전을 기리는 기념비는 연해주는 물론 러시아 곳곳에 세워져 있고, 크라스키노의 기념비는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산호 전투 기념비는 연해주의 포시예트(Посьет)와 슬라비얀카(Славянка), 라즈돌노예(Раздольное)에도 있고, 블라디보스톡(Владивосток)과 하산고속도로(Хасанской трассе) 입구에도 세워져 있습니다.

 

 

또 슬라비얀카와 블라디보스톡에는 하산의 영웅로(Улица Героев Хасана)”라는 거리가 마련되어 있고, 모스크바 남쪽의 보로네슈(Воронеж)와 동쪽의 페름(Перм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르쿠츠크 스비르스크(Свирск, Иркутская)에는 하산 전투 거리(Улица Хасановских боёв), 상트 페쩨르부르크(Санкт-Петербурге)에도 하산스카야 거리(Улица Хасанская)“가 있는데 이들은 모두 하산호 전투와 이를 승리로 이끈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이름이 붙여진 거리입니다.

 

 

러시아 영토 서단의 블라디보스톡을 비롯한 연해주 곳곳에 하산호 전투 기념비와 하산의 영웅의 거리가 설립되었고, 이루크추크와 모스크바 인근의 보로네슈와 페름, 그리고 상트 페쩨르부르크에 이르기까지 하산호의 전투가 기려지고 있는 곳으로 보아, 이 전투에서의 승리가 러시아에게는 대단히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인구 33백명의 작은 마을에 한국이 가장 중요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단지동맹 기념비가 세워져 있을 뿐 아니라, “러시아 연방 차원의 중요성(памятник федерального значения)”을 담은 기념상도 이곳에 있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이 기념상과 하산호 전투에 대한 호기심이 일더군요.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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