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방문단은 <최재형 고려인 민족학교> 방문이 주목적이지만, 160년에 달하는 고려인의 연해주 이주사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전개과정도 살피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크라스키노의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도 방문했고, 하산호 승전기념상도 돌아보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하산의 영웅들> 기념상을 관람하면서, 일정을 준비하신 황광석 선생과 안내해 주신 김발레리아 선생께서 왜 크라스키노 전망대를 일정에 포함시키셨는지 궁금했습니다. 1938년 7-8월에 진행된 하산호 전투는 고려인과는 관련성이 거의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죠. 한해 전인 1937년 9월 스탈린의 명령으로 고려인 사회의 지도자들이 대대적으로 체포, 살해됐고, 18만명에 달했던 고려인들은 기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한 후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하산호 전투는 조선과 중국, 러시아의 삼국의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러시아가 승리함으로써 일제는 (1) 괴뢰국 만주국의 영토가 팡촨(防川) 마을에 멈추어 동해 진출이 막혔고, (2) 기동력과 항공력이 뛰어난 러시아의 군사력을 얕보지 못하게 됨으로써 소련과 전쟁을 벌이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1860년의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가 러시아에 할양되었을 때 장고봉을 포함한 하산호 지역의 국경은 모호한 상태였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86년 5-7월에 중국과 러시아는 훈춘(渾春) 동쪽 지역의 경계선을 측량하고 확정해 비석을 세우고, 이를 <훈춘동계조약(中俄珲春东界约)>으로 문서화 했습니다.
이 두 조약을 종합하면 하산 호수 동쪽에 위치한 장고봉과 사초봉은 중국(당시 일본의 괴뢰국이었던 만주국)에 속했습니다만, 러시아는 만주어 조약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면서 국경선이 장고봉의 정상을 통과하는 것으로 변조했고, 이것이 후일 국경분쟁의 빌미가 됐습니다.
<훈춘동계조약>이 체결된 지 50년이 흐른 뒤 결국 국경분쟁이 발생했고, 하산호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러시아는 장고봉 지역을 얻었는데, 그 결과의 하나로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은 두만강 하구로부터 17킬로미터 지점의 팡촨 마을에서 멈췄습니다.
<훈춘동계조약> 체결 당시 만주국은 동해 진출이 막히게 된 것을 우려해 조약 제4조에 만주국 선박이 러시아의 간섭 없이 두만강 하구를 통해 동해로 드나들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통행 권한은 제대로 행사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의 하산지역 지방관의 재량으로 언제든지 만주국=중국 선박의 출입을 제한할 수 있었고, 실제로 1990년의 중국 선박의 두만강 이용 협상이 재개되기 전까지 러시아는 중국 선박의 두만강 출입을 제한했습니다.
하산호 전투의 더 중요한 결과는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 방향이 유라시아가 아니라 태평양으로 선회했다는 것입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대륙으로 진출한 일제 군국주의는 팽창의 방향을 유라시아로 잡자는 육군세력과 해양으로 잡아야 한다는 해군세력이 대립했는데, 1938년의 하산호 전투와 1939년의 할힌골 전투(일본명 노몬한 사건)에서 러시아군에게 패배한 일본군은 향후 소련보다는 미국과 대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41년 12월 진주만을 기습공격한 것은 결국 하산호 전투에서 패배한 가시적인 결과였던 것이지요.
당시 일본, 이탈리아와 함께 추축국을 형성하고 소련을 침공한 독일은 일본이 유라시아의 동쪽에서 소련을 공격해 주기를 바랐지만, 장고봉과 노몬한에서 소련군에게 패배한 일본군은 소련 침공을 포기하고 중국 해안 지역과 동남아시아의 해양으로 진출해야 했습니다.
소련의 입장에서 보면, 연해주 하산 지역과 몽골 할힌골 지역에서 일본군을 제압한 결과, 전선이 양분되지 않은 채 유럽에서 대독일 전쟁에 군사력을 집중함으로써 나치를 패퇴시키고 베를린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즉, 하산호 전투는 일본 제국주의가 미국 해군과 맞닥뜨려 패배하도록 유도하는 한편, 중국이 북동부 지역에서 동해로 진출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큰 효과를 야기했던 매우 중요했던 전투였던 것입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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