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산호 전투가 고려인과는 관련된 바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지만, 러시아와 중국, 일본의 기록에는 단편적으로나마 조선인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전투는 오늘날의 옌벤조선족자치주의 훈춘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장고봉은 만주국 최동단의 팡촨에서 북쪽으로 불과 1.5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으로,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영토분쟁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는 1937년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에 끌려가지 않은 고려인들이 꽤 많이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하산호 전투가 발발하기 직전, 일본군과 만주군에 의해 훈춘이나 그보다 더 서쪽으로 소개되었습니다. 러시아의 고려인들이 북만주로 이주당하면서 조선족으로 분류되는 상황이었으므로, 고려인들도 하산호 전투의 희생자로 분류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지적될 것은 전투가 벌어진 장고봉이라는 야산의 이름이 “조선족의 장구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는 증언이 있습니다. 팡촨의 <장구봉사건기념관>의 류총즈(劉丛志) 관장은 기념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장구봉이라는 이름의 유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옛날에는 남쪽 산이 칼처럼 가파르다 하여 칼산(刀山)이라 하였으나, 봉우리 아래에 물거품이 있어 조선족 장구처럼 생겼다고 하여 장구봉(長鼓峰)이라 하였는데, 조선말 '장(長)'과 '장(張)'이 동음이라 하여 장구봉(張鼓峰)이라 불렀습니다."
또한 하산호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8월2-6일까지의 만주군 작전일지에 “우자쯔산(五家子山)에 설치된 만주군 초소에서 한 조선족 병사(朝鲜族士兵)가 화로통을 초소 부근에 설치해 놓았다가 소련군 포병에게 발각되어 이것이 무슨 신식무기인가 오인하여 우자츠산을 맹렬하게 폭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만주군에 조선족 병사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 일본군과 만주군의 국경 도발이 하산호 전투의 발단이 되었는데, 이때 일본군들은 조선족 복장으로 변장하곤 했습니다. 예컨대 1938년 7월15일 일본군 3명이 장고봉 부근에서 정탐을 시도한 것이 러시아군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조선족의 복장을 했습니다.
이날 일본군 마츠시마 오장과 이토 군조 등 3명은 팡촨 마을 주민 진하이난과 가오윈바를 안내원으로 삼아 장구봉 부근의 소련 측 군사시설을 정찰했는데, 진하이난과 가오윈바가 보초를 서고 일본군 3명이 군사시설 지도를 그리던 중 러시아 수비대에 발견되었고, 그중 한명인 마츠시마 오장이 사살되고 두 명은 도주했습니다.
군인이 민간인 복장으로 국경을 도발한 것은 스파이 행위지만, 조선족 복장을 한 것은 러시아군인들에게 조선인을 일본인과 동일시하는 편견을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1937년 스탈린이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던 이유도 고려인이 일본의 간첩으로 활동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 같은 오해는 일본이 심어주거나 강화시켰을 가능성이 큽니다..
한편, 러시아 기록에는 하산호 전투의 최고 지휘관 바실리 브류헤르(Василий Блю́хер, 1889–1938) 원수가 “조선계 주민들의 피해를 우려해 일본군 공격에 비행기 사용을 주저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스탈린은 신랄하게 비판했고, 하산호 전투의 부진은 이미 스탈린의 눈 밖에 난 브류헤르를 숙청하기로 결정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브루헤르는 이미 자기 관할지역에서 겐리흐 류시코프(Генрих Люшков, 1900-1945)가 일본으로 망명한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고, 류시코프가 그를 반스탈린파라고 증언한 것이 간첩 리하르트 조르게에 의해 스탈린에게 전달되는 바람에 숙청 대상에 올랐습니다. 마침내 그는 하산호 전투의 부진을 이유로 체포되었고, 쿠데타 음모의 누명까지 쓰고 잔혹한 고문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는 스탈린 사망 이후 1956년 흐루시초프 치하에서 복권됐습니다.
일본군을 폭격하면서 조선인을 보호하려던 브루헤르의 의도는 부진한 전과에 대한 변명이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일본군과 조선인을 구분하고 다른 대접을 하려고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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