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단 일행은 크라스키노에서 안중근 의사 단지동맹 기념비와 하산호 전투 승전 기념비를 관람한 후, 우수리스크로 출발했습니다. 북동쪽으로 약 2백킬로미터를 2시간 반 동안 달려야 했으므로, 일행은 버스 안에서 황광석 선생의 사회로 본격적으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이번 방문을 준비하신 황광석, 박미현, 이고은 선생은 이미 연해주 방문이 처음이 아니었고, 정성훈, 이황휘 선생도 블라디보스톡에 사업체를 운영해 오시던 분들이어서 큰 감흥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류건주, 임상택, 나성수 선생님은 물론, 박한용, 김사모, 박인호, 전재운, 김찬우 선생과 저는 첫 연해주 방문이므로 처음 보는 러시아 풍광과 곳곳에 어린 고려인들의 신산한 삶과 치열한 싸움의 흔적에 자못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소개를 마친 후 황광석 선생은 박한용 선생께 마이크를 넘겨, 한인들의 연해주 이주사와 독립운동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실장을 역임하신 박한용 선생은 크라스키노 승전 기념상 앞에서도 하산호 전투를 실감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사전 준비가 전혀 없었는데도 박한용 선생은 1860년 연해주의 러시아 할양으로부터 1937년의 고려인 강제 이주에 이르기까지 청산유수의 강연을 30분이나 이어가셨습니다. 박한용 선생의 강의는 쏙쏙 들어오는 설명과 요점 정리로 정평이 났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한용 선생은 1864년의 첫 이주에서 1937년의 강제이주에 이르는 70여년의 역사를 4단계로 나누고, 이주사를 씨줄로, 독립운동사를 날줄로 삼아 드라마 같은 강연을 이어가셨습니다.
첫 단계는 초기 정착 시기입니다. 1864년 1월, 함경도 경흥 출신의 14가구 65명의 조선인들이 노브고로드(Но́вгород.) 국경초소에서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지신허(地新墟) 마을을 일궜습니다. 이주민은 점점 늘어서 시디미강과 얀치혜(연추)강 유역에도 마을이 생겼고, 1867년 이 세 마을의 한인 인구가 1,801명에 달했습니다.
1869년 극심한 홍수와 흉작으로 한인들이 대규모 이주를 감행했습니다. 그해 9월말-10월초에만 1,850명이 지신허 마을로 이주했고, 11월말~12월초에는 4,500명이 국경을 넘었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한인들을 국경지대에서 수이푼, 슈판, 레푸, 다우비헤 강변 등 내륙으로 이주시켰고, 1870년대말 연해주와 아무르주에는 21개의 마을에 6,766명의 고려인이 살았습니다.
러시아는 1884년 조러수호통상조약 체결 이전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에게 러시아 국적을 부여했고, 정주권을 받지 못한 이주민은 러시아 거주증을 받아 러시아 영토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1900년에는 모든 한인 이주자에게 러시아 국적이 부여됐습니다.
이주민은 한 가구당 50데샤치나(=약50헥타르)의 토지를 분배받았고 그에 따라 조세 의무도 지기 시작했습니다. 1895년의 연해주 통계에 따르면 고려인 인구는 1만8천400명이었고 이중 1만6천700명이 연해주 수이푼과 포시예트 지역에, 600여명은 하바로브스크 근교에, 1,100명은 아무르주 블라고슬로벤노예 마을에 살았습니다.
이 시기에 조선인들이 연해주로 이주한 것은 배고픔 때문이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입니다. 조선의 조정은 정쟁과 폭정을 일삼았고, 부국, 강병, 양민에는 무능했습니다.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백성은 기아에 시달렸고, 조선에서 살 수 없다는 판단 아래 백성들이 미지의 땅인 연해주로 목숨을 걸고 이주한 것이지요.
고려인 이주민들에게 또 하나의 동기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861년 러시아가 단행한 농노제 폐지(Отмена крепостного)입니다. 농노의 신분에서 해방된 농민들은 농토를 구입해 자작농이 되거나, 토지를 빌어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 됐습니다. 조선인들도 조선의 신분적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국경을 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인들의 연해주 이주는 폭정과 자연재해라는 배출요인과 함께 농노제가 폐지된 러시아의 흡인요인이 동시에 작용해 가속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jc, 2024/5/15)
'우수리스크2024방문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수리스크2024방문단] 25. 고려인 이주사 (2) 의병활동과 계몽운동 (1) | 2024.06.07 |
---|---|
[ウスリスク2024訪問団] 24.高麗人移住史(1)初期定着 (0) | 2024.06.07 |
[ウスリスク2024訪問団] 23.ハサン湖戦闘(5) 高麗人と朝鮮人 (0) | 2024.06.03 |
[우수리스크2024방문단] 23. 하산호 전투 (5) 고려인과 조선인 (0) | 2024.06.03 |
[ウスリスク2024訪問団] 22.ハサン湖戦闘(4) 長古峰事件記念館 (0) | 2024.06.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