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연해주 이주의 2번째 단계이자 독립운동의 첫 단계는 1904년 러일전쟁부터 1917년의 러시아 혁명 직전시기까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조선은 을사늑약(1905)과 정미7조약(1907)을 거쳐 경술국치(1910)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일제에 강점당했고, 폭압적인 무단정치에 억눌렸습니다. 러시아도 러일전쟁(1904)에서 패배한 후 일차대전(1914)과 러시아혁명(1917)으로 이어지는 격동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연해주 고려인들은 생활이 안정됐고, 독립운동의 인적, 물적 토대가 든든하게 다져졌습니다. 일찍 이주해 정착한 고려인들은 러시아 국적을 취득해 신분이 안정됐고, 농업와 사업에서 두각을 냈습니다. 한편, 일제의 을사늑약(1905)과 군대해산(1907)에 분노한 조선인들이 연해주로 망명해 들어와 연해주 고려인 사회의 리더십을 담당했습니다.
고려인들이 근면과 단결로 일군 안정과 부는 인상적입니다. 대표적 성공 사례가 최재형 선생이었지요. 맨손으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지 불과 2세대만의 일이었습니다. 1908년 <동의회>가 의병을 모집했을 때 3천명의 병사와 3만루불의 군자금이 모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군자금은 이위종 선생의 부친 이범진(李範晉) 주러공사가 남긴 1만루불과 최재형 선생이 사재를 털어 출연한 1만3천루불, 그리고 수청(지금의 파르티잔스크)의 한인들이 모금한 6천루불을 포함해 약 3만루불에 달했습니다. 이는 오늘날의 약 10억원에 해당합니다.
특히 수청지역의 기부금이 놀랍습니다. 1932년 7월호 <삼천리>에 따르면 “수청마을의 농민은 약 40여호에 불과하고 인구는 300명을 넘지 못”했지만, “남부럽지 않게 부유하게 사는 촌”이었다고 합니다. 40가구 300인의 마을에서 6천루불의 의병 군자금이 모금된 것입니다.
1908년의 6천루불은 2015년의 17만달러(금값기준)에 해당하고, 오늘날 한국 원화로 약 2억4천만원에 해당합니다. 이는 한 가구 평균 6백만원, 1인 평균 80만원씩 기부했다는 뜻입니다. 당시 연해주 고려인 농민들이 부유했고, 독립 열망도 높았다는 뜻입니다.
이 시기에는 연해주의 고려인 인구도 증가했습니다. 1906년 3만4399명이었던 고려인 인구는 1910년에 5만965명으로 늘었고 비공식 이주민까지 6만명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고려인의 인구 증가는 풍부한 물산과 함께 항일투쟁의 근거가 됐습니다. 특히 잘 정착되고 부유한 기층 농민과 이 시기에 망명해 온 안중근, 유인석, 홍범도, 이상설, 이종호, 신채호 등의 지도자들이 결합해, 일제의 조선 침략에 맞서 투쟁하기 시작했습니다.
1908년 8월 <동의회>를 주축으로 의병이 구성되고, 바로 국내진공을 단행했습니다. 약 6만명의 인구에서 3천명의 의병이 모집됐습니다. 1900년대 이주 2세대를 맞은 고려인의 연령 구성은 정상분포를 이루기 시작했을 것이므로, 20명에 한명 꼴로 의병에 자원했다는 것은 젊은 남성들이 농사 인력의 부담까지 제치고 모두 의병으로 나섰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동의회> 의병(1908)이 국내진격에 실패하고, 뒤이어 구성된 <13도의군>도 일제의 간섭으로 러시아 정부에 의해 해산되자, 항일 무장 투쟁의 열기는 사그라졌습니다.
그 뒤를 계몽운동과 외교운동이 뒤를 이었습니다. 옌치허(연추)와 니콜스크(=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학교와 신문사가 설립되었고, 고려인 대표단체로 성명회(1910)와 권업회(1911), 대한광복군정부(1914), 전로한족중앙회(1917) 등이 구성되어 활동했습니다.
이와 함께 해조신문(1908)과 대동공보(1908), 대양보(1911), 권업신문(1911), 대한인정교보(1912), 한인신보(1917), 청구신보(1917), 한족공보(1918) 등의 한글 신문과 잡지가 잇달아 발행되어 고려인 사회에 국내외 정세를 알리고 활동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이 시기의 연해주 독립운동은 안정된 민중과 열정적인 엘리트의 결합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나, 일제의 외교적 간섭으로 고려인 독립운동 단체들은 자주 러시아 정부의 탄압을 받았고,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jc, 202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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