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의 러시아 이주 3기이자 독립운동 2기는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1917) 이후 내전을 거쳐 소련 정부의 권력이 연해주까지 미치게 된 1923년경까지, 즉 레닌의 집권 시기입니다.
러시아 혁명은 3단계로 구분됩니다. 1차는 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불리는 1905년 1월의 민중 봉기, 2차 혁명은 1917년 2월의 제정 붕괴, 3차 혁명은 그해 10월의 공산 혁명입니다.
1905년의 민중봉기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러시아 사회는 크게 동요했습니다. 1907년경 안정을 되찾아 산업화가 진행됐지만 제1차 세계대전(1914)에 참전하면서 상황은 악화됐습니다. 황제 니콜라이2세는 1915년부터 직접 전투를 지휘하면서 국정을 황후에게 맡겼지만, 황후를 등에 업은 라스푸틴의 실정으로 국정은 파탄에 이르렀습니다.
1917년의 2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부르조아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그해 10월 혁명으로 케렌스키 임시정부가 볼세비키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고려인 사회는 급격한 변화를 맞습니다. 연해주는 러시아의 변방이었으므로 혁명의 전파 속도가 느렸고, 진행도 일률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인 사회가 일관성 있게 대처하기 어려웠습니다.
전로한족중앙회(1917)는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케렌스키 임시정부에 즉각 축하전문을 보냈지만, 10월 혁명에 대해서는 섣불리 반응하기 어려웠습니다. 러시아 전역에서 혁명 적군과 반혁명 백군의 대결이 계속됐고, 연해주에서는 적군이 승리할 전망이 어두웠기 때문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제가 시베리아에 거주하는 일본인 보호를 이유로 시베리아 출병(1918년 4월)에 나서자 전로한족중앙회는 적군과 백군 사이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선언(1918년 5월)하는 한편, 항일 투쟁은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10월혁명 직전 러시아의 고려인은 약 10만명에 달했고, 연해주에만 8만1,825명의 고려인이 살았는데 이는 연해주 전체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했습니다. 10월 혁명으로 집권한 레닌은 고려인을 포함한 소수민족들에게 자치권과 토지분배를 약속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고려인은 혁명을 지지했습니다. 레닌의 약속을 믿고 고려공산당은 1922년 코민테른에 고려인의 자치를 요구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한편 한국에서 삼일운동(1919년 3월)이 일어나자 연해주에서도 대한국민의회 명의의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면서 만세운동을 벌였고 국내진공을 통해 국권을 회복할 계획을 진행시켰지만, 연해주에 진주한 일본군의 고려인 독립운동 탄압과 일본군을 연해주에서 철수시키기 위한 협상에 나선 러시아 정부의 탄압으로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봉오동 전투(1920년 6월, 홍범도, 최진동)와 청산리 전투(1920년 10월, 김좌진, 나중소, 이범석, 홍범도)에서 크게 승리한 독립군은 일본군의 반격을 피해 러시아로 이동했고, 연해주에서 백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싸우던 고려인 빨치산 부대들도 아무르주의 스바보드니(Свободный=자유)로 집결했습니다. 자유시에 집결된 독립군의 규모는 약 3천명에 이르렀습니다.
일본군의 압력 아래 러시아 적군은 독립군과 빨치산들을 적군에 흡수하거나 아니면 무장을 해제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자유시참변(1921)이 발생했습니다. 이후 러시아내 빨치산과 독립군은 적군에 편입되었고, 이를 거부한 독립군은 무장해제를 당하거나 만주로 돌아갔습니다.
이 시기의 고려인들은 러시아 혁명을 지지했고, 빨치산들이 적군과 협력해 백군 및 일본군과 싸웠지만, 결국 독자성을 잃고 적군에 편입되거나, 탄압을 받고 무장해제를 당했습니다.
이는 일본군의 압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레닌의 한인 정책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레닌은 연해주의 한인들이 반혁명 세력과 일본군에 저항해 주기를 바랐지만, 소련군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무장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우려했던 것입니다.
결국 러시아 혁명과 내전의 시기(1917-1923)에 고려인들은 일본군에 의한 신한촌 사건(1920년 4월)과 소련군에 의한 자유시 참변(1921년 6월) 등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jc, 2025/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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