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가 끝나고 약간의 사이(Pause)를 두었다가 시작된 2부에서는 <보살춤(1937)>, <한량춤(1938)>, <낙랑의 벽화(1936)>, <유랑예인(1935)>의 네 작품이 공연되었다.
2부-1. <보살(Bodhisativa)춤>은 “불교 분위기에 푹 잠긴 최승희는 차분하고도 우아한 불교 예술의 아름다움, 즉 순수하고 고요한 부처의 청정심, 곧 열반의 심상을 표현하려고 한다”고 설명되어 있다.
1부에서 공연된 <승무>가 불교를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그 비판은 불교의 타락과 사회적 악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1부 첫작품으로 <승무>를 배치했던 최승희는 2부의 첫작품으로 <보살춤>을 선정하면서 불교의 원래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보살춤>의 초연이 언제였는지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보살’이라는 말이 들어간 최초의 작품은 <보현보살(1937)>인데, 이 작품은 1937년 3월말 혹은 4월초의 이왕직 본청 주최의 순정효황후 윤씨의 위로 특별공연에서 초연되었다.
한편 최승희는 같은 해 9월27일부터 사흘 동안 도쿄극장에서 열린 특별 공연에서도 <보살도>라는 제목의 작품을 발표했는데, <보현보살>과 같은 작품이거나 수정 또는 개작된 작품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본다면 파리 플레옐 공연에서 공연된 <보살춤>의 초연시기는 1937년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후 최승희는 <가무보살(1941)>과 <관음보살(1941)>, <지장보살(1947)>과 <암굴의 보살(1947) 등의 보살춤 시리즈를 잇달아 발표했으나, <보살춤(1937)이나 <보현보살(1937)>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참고로 <보살도(1937)>를 제외하고는 <보살(Bodhisativa)춤>이라는 제목은 서양 공연에서만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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