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5. 1부 마지막 작품의 프랑스어 제목이 ‘젊은 날의 꿈(Rêve de sa jeunesse)’이지만 해설을 읽어보니 원제목이 <신노심불로(身老心不老)>이다.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는 뜻이다. 프로그램의 설명에는 “한국의 노인이 담배를 피우며 책을 읽다가 갑자기 청년처럼 춤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야위고 힘없는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아 실망하면서 다시 노인으로 되돌아온다”고 되어 있다.
김채윤도 이 작품을 “몸은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고, 지나간 청춘시절의 추억에 빠져 젊은 날 추었던 춤을 추려고 해도 쇠한 육신이 그 꿈을 이뤄주지 못한다는 내용”이라고 풀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개인의 노화로 인한 좌절감 표현을 넘어서는 사회적 의미도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때는 강성했던 조선이 힘도 잃고 꿈도 없이 늙어버린 상황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도 <옥적곡>과 함께 1937년 순정효황후 윤씨(1894-1966)의 위로 특별공연에서 초연되었다. 이 특별공연은 왕실 행사로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정병호(1995:116)는 예술원 회의 성경린의 증언과 당시의 프로그램을 근거로 순정효황후 윤씨를 위로하기 위한 이왕직 본청 주최의 특별 무용공연이 인정전 서행각 앞에 설치된 가설무대에서 열렸다고 서술했다.
이 공연이 열린 시기는 최승희가 부민관에서 숙명여자전문학교 창립을 위한 특별공연을 가졌던 1937년 3월29일 이후 사리원 지방공연을 가졌던 4월3일 사이의 어느 시점이었을 것이다. 이 공연의 레퍼토리는 10작품이었는데, 그중 8작품이 최승희에 의해 공연되었던 것으로 확인되므로 이 공연은 사실상 최승희가 이왕직의 전속 반주로 순정효황후 윤씨를 위해 마련한 개인공연이었던 셈이다. 이 공연의 레퍼토리와 연희자는 다음과 같았다.
[제1부] 1. 속무(속곡) 최승희, 2. 옥적곡(고전곡) 최승희, 3. 인도조(타악기반주), 장귀희, 4. 초립동(속곡), 최승희, 5. 세 개의 전통적리듬(고전곡), 최승희, [제2부] 1. 보현보살(고전곡), 최승희, 2. 신노심불로(고전곡), 최승희, 3. 민요조(속곡) 와가구사로시고, 4. 무녀춤(속곡), 최승희, 5. 즉흥무(고전곡) 최승희
이때 최승희가 윤황후를 위해 초연한 <신노심불로> 등의 5곡이 파리 살플레옐 극장 공연에서도 공연되었던 것인데, 이 다섯 작품은 일반 공연 전에 조선의 황족을 위해 먼저 특별 공연되었다는 특별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년 양력 9월 19일(음력 8월 20일) ~ 1966년 2월 3일)는 대한제국의 황후이자 한국사의 마지막 황후이다. 대한제국 순종의 계후(繼后)이며, 일제 강점기의 이왕비, 이왕대비로 칭해졌다. 그는 1907년 12세의 나이로 황태자비로 책봉되었고, 그해 황태자 순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그녀도 황후가 되었다.
순정효황후는 1910년 병풍 뒤에서 어전 회의를 엿듣다가 친일 대신들이 순종에게 한일병합조약의 날인을 강요하자, 국새(國璽)를 자신의 치마 속에 감추고 내주지 않는 결기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백부 윤덕영에게 국새를 강제로 빼앗겼고, 이후 대한제국의 국권은 일제에 피탈되어, 순종이 황제에서 이왕으로 격하되면서 자신도 이왕비로 내려앉았고, 창덕궁의 대조전(大造殿)에 머물렀다가, 1926년 4월 순종이 사망하자 대비(大妃)로 불리며 창덕궁 낙선재(樂善齋)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었던 것이다.
윤황후가 최승희의 <신노심불로>를 관람할 때의 나이는 40대로 아직 ‘신노(身老)’라고 할 만한 연배는 아니었으니, 이 작품은 윤황후나 혹은 다른 어떤 개인을 지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뇌쇠하여 과거의 영화를 회복하기는커녕 식민지로 전락해버린 조선의 상태를 가리키는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즉, 조선인들은 마음으로는 옛날의 영화를 잊지 않고 있지만, 지금은 나라를 잃고 옛 영화를 회복할 능력이 없음을 개탄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조정희PD의 최승희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플레옐 5-7] <한량무>, 젊은 엽색가(Un jeune charmeur) (0) | 2021.05.16 |
---|---|
[살플레옐 5-6] <보살춤>, (Bodhisativa) (0) | 2021.05.16 |
[살플레옐 5-4] <기생춤>, (Danse de Kiisan) (0) | 2021.05.16 |
[살플레옐 5-2] <천하대장군>, (Tenka Taishogun) (0) | 2021.05.16 |
[살플레옐 5] 최승희의 <살플레옐> 공연 레퍼토리 (0) | 2021.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