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교육투쟁은 재일조선인이 1948년 4월14일부터 26일까지 효고현과 오사카부에서 전개한 조선인학교 폐지에 반대시위입니다. 연합군최고사령부가 전후에 유일하게 비상사태를 선언해야 했을 만큼 치열했던 민족교육 수호투쟁이었습니다.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 대학의 정영환(鄭栄桓) 교수의 자료에 따르면 민족교육 수호투쟁이 처음 일어난 곳은 야마구치(山口)였고, 이후 오카야마(岡山), 효고(兵庫)와 오사카(大阪), 그리고 도쿄(東京)로 이어졌기 때문에, 이를 4.24교육투쟁으로 고쳐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야마구치현의 교육투쟁이 시작된 것은 3월31일이었고,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 수호투쟁이 한신지역에서 사망자까지 발생할 만큼 치열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한신교육투쟁이라는 원래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점령의 연합군사령부(GHQ)는 1947년 10월 일본정부에 “재일조선인을 일본의 교육기본법, 학교교육법에 따르게 하라”는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이에 문부성은 1948년 1월24일 전국 도도부현의 지사에게 “조선인 자녀들을 일본 학교로 전학시키라”는 공문을 발송했고, 3월24일에는 “거부하는 조선인 학교를 폐쇄하라”는 공문을 재차 발송했습니다.
고베(神戶)에서는 4월7일 조선인학교 폐쇄 명령이 발령되었는데,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활동가들은 여기에 저항했습니다. 니시고베(西神戶) 조선인소학교에서는 학부모들이 몸으로 교문을 막고 항거했고, 4월24일에는 효고 현청 앞에 결집하여 학교폐쇄 명령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약 1시간 반에 걸친 교섭을 통해 효고현과 고베시 당국은 학교폐쇄 명령을 철회한다는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각서는 미군정에 의해 무시되었습니다.

오사카에서는 4월23일 부청 앞의 오테마에(大手前) 공원에 3만여명이 집결해 조선인학교 폐쇄에 반대하는 인민대회를 개최하던 중, 무장경관의 진압과정에서 23명이 중상을 입었고 200여명이 검거되었습니다. 4월26일에도 인민대회가 열렸고, 경찰은 8천명의 진압대를 동원했습니다. 이날 경찰의 발포로 김태일(金太一) 학생이 사망했습니다.

한신지역의 조선인 학교 폐쇄 반대시위에 연인원 1백만명이 참가했고, 경찰의 진압으로 인한 부상자가 150여명, 사망자가 1명이었습니다. 3천여명이 검거되었고, 이중 212명이 기소되었습니다. 각급재판소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은 수형자가 36명에 이르렀습니다.

재일조선인은 많은 희생을 치렀지만, 5월3일 조선인교육대책위원회와 문부대신 간에 “교육기본법과 학교교육법을 따른다”는 전제 아래, “사립학교의 자주성 범위 내에서 조선인의 독자적인 교육을 행하는 것을 전제로 사립학교로서의 인가를 신청한다”는 각서를 교환, 조선인학교가 존속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신교육투쟁이 승리한 것이지요.

한신교육투쟁의 사망자는 한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조선인연맹(=조련) 효고현 위원장 박주범(朴柱範)씨입니다. 그는 투옥되었다가 1949년 11월25일 병상악화로 가석방되었으나 4시간 만에 사망했습니다. 옥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지요.
효고조선관계연구회(兵庫朝鮮関係研究会)의 히다 유이치(飛田雄一) 선생은 한신교육투쟁 50주년을 앞둔 1997년 10월 대구를 방문, 박주범씨의 동생의 따님인 박재희(朴再禧)씨를 찾아갔습니다. 50주년 행사에 희생자 가족을 초청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885년생인 박주범씨는 1927년 일본에 건너가 고베시 히가시나다에 거주했습니다. 그는 한신소비조합 설립에 참여해 이사로 활동했고, 해방 후에는 조련의 한신 지부장이 되었다가, 1948년에는 효고현 위원장으로서 한신교육투쟁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큰아버님의 유해를 고향 대구로 모신 박재희씨는 “50년이 지났지만 박주범씨의 유족을 찾아온 것은 히다 유이치 선생이 처음”이라고 하셨다는군요. 한신교육투쟁의 성과는 대대적으로 홍보되지만, 그 희생자들을 찾아보고 기리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이지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jc, 202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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