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임만(金稔万) 선생은 일본 효고현 아마가사키에 거주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다. 그는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하면서도 재일조선인의 모습을 20년 이상 카메라에 담아왔다.

 

한국에서 상영된 그의 작품으로는 [카마가사키 권리찾기(住民票, 2011)][용왕궁의 기억(2016)], [경찰아파트(キョンチャルアパー, 2022)], [돈즈루봉과 야나기모토 비행장(どんづる柳本飛行場, 2022)] 등이 있다.

 

 

김임만 감독의 작품들은 모두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카마가사키의 권리찾기]는 카마가사키의 재일외국인 일용직 노동자의 주민등록표가 악용되는 것을 고발했고, [용왕궁의 기억]은 김임만 감독의 모친이 활동하던 용왕궁을 중심으로 재일조선인의 고난을 추적하면서 모자간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경찰아파트][돈즈루봉과 야나기모토 비행장]은 태평양전쟁 말기 조선인 노동자들이 강제동원되었던 유적지들을 기록 영상으로 남겼다.

 

김임만 감독은 재일조선인 2세로 본명과 통명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했다. 그는 2009년 오사카 시의 하청을 받은 종합건설회사 [오테제네콘(大手ゼネコン)]의 재건축 일을 소개받았다. 오테제네콘의 재하청을 받은 [오바야시구미(大林組)]김임만이라는 본명을 사용해왔던 그에게, 이번에는 통명으로 일해 달라면서 그가 사용할 안전모에 가네우미라는 통명을 붙였다. 그의 본명 명찰은 버려져 있었다.

 

 

김임만 감독은 그리 화목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고, 일본학교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조선말을 하지 못했다. 부친은 일본에서 살려면 일본식 통명을 써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자녀들에게 통명 사용을 강요했던 부친도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 마련한 묘비에는 본명을 썼다. 재일 조선인은 죽어서야 떳떳하게 본명을 쓸 수 있다는 일본의 현실을 김임만 감독은 개탄했다.

 

이후 김임만 감독은 조선인 친구들을 만나면서 민족의식이 성장했고, 통명 대신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작품도 본명으로 발표했고, 직장에서도 불이익을 무릅쓰고 본명으로 일했다.

 

그러나 2009년 김임만 감독은 [오테제네콘]에서 하청을 받은 [오바야시구미(大林組)]에서 약 삼 개월 반 동안 가네우미라는 통명으로 일해야 했다. 통명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고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오바야시구미]는 취업 지원한 김임만 감독의 이름이 본명인 것을 보고 취업증명서를 요청했는데, 재일조선인으로서 특별영주권자인 김임만 감독은 취업증명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하청업체는 [오테제네콘]에 이를 설명하는 대신에 김임만 감독에게 일본식 통명을 쓰도록 강요한 것이다.

 

[오테제네콘]의 계약이 끝난 후, 김임만 감독은 하청업체인 [오바야시구미]와 원청인 오사카시청을 상대로 정신적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재일조선인에게 암묵적으로 일본식 통명을 강요하는 사회와 국가에 본격적으로 저항을 표시한 것이었다.

 

 

2년여의 심리 끝에 오사카 지방법원은 2013130일의 1심 판결에서 원고 패소라는 부당 판결을 선고했다. 통명을 요구를 강제하지도 않았고, 통명 사용을 요구한 것은 김임만 감독에게 신속하게 일을 맡기려는 것이었지, 차별대우 때문이 아니라는 게 판결 요지였다.

 

김임만 감독은 1심판결에 불복해 27일 항소했지만, 그해 1126일 오사카 고등법원은 재차 김임만 감독에게 실망을 안겼다. “오바야시구미가 불필요한 통명 사용을 강제한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안전모의 본명 명찰을 제거한 행위는 개인의 정체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그 이유가 차별대우 때문은 아니라, 김임만 감독이 신속하게 일할 수 있게 하려는 선의 때문이었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임만 감독은 2심에서는 1심보다 진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법원도 재일조선인의 권리를 인정해 주지 않는 현실을 절감했다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는 또 재일조선인의 본명 사용 보장을 위한 활동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jc, 20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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