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1940년 2월11일부터 식민지 주민들의 황국신민화를 이유로 창씨개명을 추진했다. 일본 정부가 식민지 주민들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라고 강요한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1939년 11월10일 <조선민사령>을 개정, 조선에서도 일본씩 씨명제를 따르도록 규정하고, 1940년 2월11일부터 8월10일까지 씨(氏)를 정해 제출할 것을 명령했다. 조선인 창씨개명의 대상자는 “조선에 본적을 둔 모든 조선인”이었으므로 재일조선인도 포함됐다.
친일파들은 자발적으로 창씨개명에 응했으나 조선민사령 개정이 발효한 후 3개월 동안 창씨개명한 조선인 가구는 7.6%에 불과했다. 이에 총독부는 본격적으로 창씨개명을 압박, 신고마감까지 약 332만가구(79.3%)가 창씨하게 했다. 문정창(文定昌, 1899-1980)은 [군국일본조선강점36년사] 하권에서 일제가 창씨개명에 동원한 강요 방식을 열 가지로 서술했다.
(1) 창씨(創氏)를 하지 않은 사람의 자녀에 대해서는 각급 학교의 입학과 진학을 거부한다. 이미 입학한 학생은 정학 또는 퇴학 조치를 하고, 학교 차원에서 거부할 경우 해당 학교는 폐교한다. (2) 아동들을 이유 없이 질책·구타하여 아동들의 애원으로 부모의 창씨를 강제한다. (3) 창씨를 하지 않은 사람은 공·사 기관에 채용하지 않으며 현직자도 점차 해고 조치를 취한다. 다만, 일본식 씨명으로 창씨개명한 후에는 복직할 수 있다.
(4) 행정 기관에서는 창씨를 하지 않은 사람의 모든 민원 사무를 취급하지 않는다. (5) 창씨를 하지 않은 사람은 비국민·불령선인으로 단정하여 경찰수첩에 기입해 사찰을 철저히 한다. (6) 창씨를 하지 않은 사람은 우선적인 노무 징용 대상자로 지명한다. (7) 창씨를 하지 않은 사람은 식량 및 물자의 배급 대상에서 제외한다.
(8) 철도 수송 화물의 명패에 조선식 씨명이 쓰여진 것은 취급하지 않으며, 해당 화물은 즉시 반송 조치한다. (9) 창씨를 하지 않은 사람은 내지(일본 본토)로 도항할 수 없다. (10) 창씨개명령 제정 이후 출생한 자녀에 대하여 일본식 씨명으로 출생 신고하지 아니할 경우에는 그 신고를 계속 반려하여 자녀와 그 부모가 창씨하도록 강제한다.
일제의 조선인 창씨개명은 명목상 내선일체를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조선인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일제는 4월3일부터 조선에 지원병제도를 시행했다. ‘지원병’이란 말은 이중으로 기만적이다. (1) 조선인에게 일본국적을 주지 않으면서도 병역을 부과하기 위해서였고, (2) 강압과 회유로 지원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거듭된 패전으로 병력 손실이 심각하자, 일제는 병력 보충을 위해 1944년 징병제까지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일제는 지원병 제도를 준비하면서 1938년 5월5일 본국과 식민지에 [국가총동원법]을 발효했는데, 이는 전쟁 물자를 강탈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1939년 11월10일 조선민사령을 개정해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이다.
지원병제도와 국가총동원령, 창씨개명은 황국신민화와 내선일체라는 명목 아래 진행됐지만, 전쟁을 위한 인력과 물자를 강탈하는 것이 실제 목적이었을 뿐,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의 차별을 철폐하거나 완화할 생각은 없었다. 이는 조선 호적의 변경 과정으로 확인된다.
1910년 일제는 [민적법] 개정을 통해 조선 호적을 일제 민적으로 번역했지만, 창씨는 시도되지 않았고, 조선인의 이름은 성+이름의 형태로 기입됐다. 1940년 일제는 창씨개명을 통해 창씨를 강요하고, 개인의 이름을 씨+이름의 형태로 기입했다. 일제가 패망한 후 1946년 창씨개명령은 원천무효로 선언되었고, 일제 민적은 대한민국 호적으로 되돌려졌다.
일제가 내선일체를 원했다면 1910년부터 창씨개명을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조선인을 차별했던 일제는 실제로는 내선일체를 원하지 않았거나, 혹은 자유로운 일본인과 노예의 조선인으로서의 내선일체를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쟁 동원을 위해 마지못해 황국신민화나 내선일체를 주장했지만, 총독부 경무국이나 일제 본국에서는 조선인 구별이 어렵다는 이유로 창씨개명에 반대했다.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창씨개명을 강압적으로 추진한 것은 그만큼 전쟁 동원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jc, 20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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