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1세와 2세들의 통명은 창씨개명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었다. 조선에서는 강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약 20%의 조선인들이 창씨개명을 거부했다. 창씨개명을 하는 경우에도 일본식 창씨는 많지 않았고, 자신의 관향이나 성을 파자해서 창씨하곤 했다. 예컨대 전주 이씨는 국본(國本)이나 조본(朝本)이라는 식으로 왕가임을 강조했다.
심지어 ‘천황폐하’와 발음이 같은 덴노 헤이카(田農炳下, 田農昞夏)로 창씨하여 천황을 조롱하거나, 미나미 타로(南太郞)라고 창씨개명해 당시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를 비난한 사람도 있었다. 또 산천초목(山川草木)이나 청산백수(靑山白水), 강원야원(江原野原) 등으로 장난삼아 창씨하거나, 성을 가는 놈은 개자식이라는 뜻으로 ‘이누코(犬子)’라고 창씨한 사람도 있었다.
창씨개명에 대한 반항과 조롱은 조선에서는 가능했지만, 재일조선인들은 그럴 수 없었다. 거의 대부분 일본식으로 창씨와 개명을 해야 했고, 해방 후에도 이를 유지했다. 패전한 일본인들의 좌절감과 분노는 승자인 미국인들에게 향한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도 자신들이 노예처럼 부리던 조선인들에게 향했고, 조선인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
이같은 사회상황에서 재일조선인들은 더욱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했고, 재일조선인들의 생존을 위해 통명을 사용했던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일한 예외가 재일조선학교였다.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들이 귀국을 준비하면서 자녀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치기 위한 [국어강습소]로 시작된 조선학교는 1946년의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의 지도 아래 전국으로 확산됐다. 1948년의 한신교육투쟁을 거치면서 1949년 조선학교가 폐쇄되기도 했으나, 1953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이 결성되면서 재건됐고, 재일조선인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결집했다.
조선학교의 특징은 조선말과 조선역사를 가르치고, 조선의 문화예술활동을 장려하는 등의 민족교육을 강조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본명 사용이었다. 조선학교 학생들의 본명 사용은 다른 재일조선인들에게는 대단히 용감한 행동이고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조선학생들도 기타 사회생활에서는 통명을 사용해야 했고, 특히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면 통명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학창 시절에 본명을 사용하고 모국어로 공부하는 것은 학생들의 자존감 형성에 매우 긍정적이다.
앞서 잠시 언급한 김명곤 감독의 삿포로 조선학교 전입생의 경우, 구시로의 일본학교 재학 중에는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도 못했고, 삿포로 전학도 일본학교로 간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 정도였다. 친구들과의 교유관계에서 본명 사용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김명곤 감독이 또 다른 예로 들었던 2019년 한 오사카 공립학교의 민족학급 수업 참관도 마찬가지였다. 그 마지막 수업에서 민족학급 강사는 손정의가 본명을 쓰면서도 일본 사회에서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여러분도 본명쓰기를 권한다”고 했다고 한다.
이는 마치 알퐁스 도데(Alphonse Daudet)의 [마지막 수업(La dernière classe, 1873)]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가 알사스-로렌을 프로이센에 넘겨주어야 했던 시기, 프랑스어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칠판에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를 썼던 아멜 선생처럼,
조선민족학급의 강사는, “어디까지나 여러분의 선택”이라면서도 “본명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그만큼 재일조선인들은 일본사회에서 일본식 통명을 사용해야 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본명 사용을 명예로운 일로 간주하는 것이다.
세계인권선언은 제26조에서 “교육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목표”로 하며, ”부모는 자녀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종류를 선택할 우선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인권선언에 참여하고 있다.
2019년에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총련계 민족학교인 조선학교를 교육무상화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권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유독 재일조선인과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국제기구의 어떤 권고나 제재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jc, 202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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