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천년대 들어 방글라데시는 경제적으로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인구증가율은 둔화되었고, 교육 상황이 개선되고, 산업 규모가 증가하면서, 경제지표들이 개선됐습니다.
20년동안 방글라데시의 경제성장율은 연평균 6.25%였고, 2022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2천5백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서남아시아의 최고 수준으로서 인도까지 능가한 수치였습니다. 국제기구들은 2026년 방글라데시가 최빈국을 탈출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째서 민중혁명이 일어난 것일까, 하는 것이 의문이었습니다. 무스타인 자히르씨의 포럼 발표문에는 이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거의 없었습니다.
https://teameye.tistory.com/717
굳이 단서를 찾자면 청년 실업률이 15%로 전체실업률의 3배에 달해,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난이 극심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공직을 선호하지만, 하시나 정권은 공직의 56%를 특정 계층에 할당했습니다. 여성과 저개발지역 출신에게 각각 10%, 토착원주민에게 5%, 장애인에게 1%, 그리고 자유투사의 자손들에게 30%의 공직이 할당되었습니다.
https://www.voanews.com/a/bangladeshi-protesters-demand-end-to-civil-service-job-quotas/7688573.html
대학생들은 2024년 7월부터 공직 할당제 반대 시위에 나섰습니다. 이들은 토착원주민과 장애인을 제외한 다른 할당량에 반대했습니다. 특히 인구의 0.13%인 자유투사의 손자들에게 공직을 30%나 할당한 것은 차별이며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대법원은 공직 할당제에 일시 중지 선고를 내리고, 최종 결정을 2024년 8월7일로 연기했지만, 대법원이 시간을 끌 뿐이라고 생각한 학생들은 시위를 계속했습니다. 공직 할당제가 시행되면, 이미 100대1에 도달한 공직 취업 경쟁률이 두 배 이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었습니다.
20여년 동안의 고속 성장도 대학생들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성장은 대부분 봉제업을 포함한 경공업이 선도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들이 진출할 전문직 부문은 여전히 취약했고, 대학 졸업자들은 공직을 선호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시나 정부가 부활시키려는 공직 할당제는 이들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의 공직 할당제 반대시위가 민중 항쟁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함이 있습니다.
자히르씨는 포럼 발표문에서 2024년 7월16일 다카대학 영문학과의 아부 사예드(Abu Sayed)를 포함한 5명의 대학생이 경찰의 발포로 사망한 것이 민중시위로 확대된 계기였다고 설명했습니다.
7월18일 다카대학 MBA과정의 미르 마흐푸주르 라흐만 무그도(Mir Mahfuzur Rahman Mughdo)의 사망 모습도 SNS을 통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지면서 방글라데시의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했다고 자히르씨는 설명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방문단에 참여한 3명은 모두 시위에 직접 참여한 활동가들이므로, 그들의 증언은 믿을 만한 사실일 것입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시위가 민중혁명으로 확산된 데에는 뭔가 근본적인 요인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문이 쉽게 가시지 않았습니다. (jc, 2024/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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