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순 클럽(대표 이고은)>은 방글라데시 시민혁명의 학생대표 2명을 한국에 초청했습니다. 사미아 악타르(Samia Akther)씨와 모스피쿠르 라흐만 조한(Mosfiqur Rahman Johan)씨입니다.
이들은 지난 10월30일 한국 입국비자를 발급받았고, 11월4일 한국에 도착, 11월11일까지 서울과 광주 등을 방문해서, 몬순혁명의 배경과 경과를 설명하고, 혁명의 기록과 희생자 예우를 위한 자문을 구하게 됩니다.
모스피쿠르 라흐만 조한씨는 사립 브라크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는 사진전과 SNS포스팅을 통해 방글라데시의 강제실종, 사법외 살인, 강제구금, 경찰의 잔혹행위 등을 기록하고 고발해 왔습니다.
하시나 정권 하의 강제실종
이번 방한을 통해 모스피쿠르씨는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벌어진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의 실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강제실종(enforced disappearance)이란 민간인이 법원의 영장 발부 없이 경찰과 정보기관, 군과 준군사조직 등에 의해 체포, 구금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법외 살인(extrajucial killing)이란 적법한 사법절차에 의하지 않은 정부의 민간인 살해행위를 가리킵니다.
민간인을 체포하거나 살해하면서도 기록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가족들조차 강제실종자들의 생사를 알 수 없고, 구금된 장소도 알 수 없습니다.
주로 야당 지도자들과 반정부 활동가들이 강제 실종되기 때문에, 고문과 잔혹행위가 자행되는 경우가 많고, 고문 중에 사망하더라도 사체가 암매장되거나 유기되기 때문에 가족들에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강제실종은 1930년대 나치 독일 치하에서 빈번하게 자행되었고, 1960년대에는 중남미의 군사정부들이 공포 정치의 수단으로 채택하곤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인권단체인 오디카르(odhikar.org)에 따르면 하시나가 집권한 2009년부터 2024년까지 방글라데시의 강제실종자는 708명입니다.
이는 강제실종자 피해자연합회를 통해 파악된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 강제실종자와 강제실종 중의 사망자 규모는 훨씬 클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그러나 하시나 정부는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강제실종 관행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 왔습니다.
방글라데시의 경찰 기록은 일반기록(GD)와 중범죄기록(FIR)으로 나뉘지만, 가족들이 강제실종을 신고하더라도 경찰은 실종의 불법유무를 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이 두 기록에 등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조사 요구를 묵살한 것이지요.
나아가 하시나 정부는 피해자 가족들을 통해 강제실종을 조사하고 기록해 온 인권단체 오디카르를 탄압했습니다.
2018년 오디카르의 선거참관 자격을 박탈했고, 2022년에는 국가 위신을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자격을 박탈했습니다. 2023년에는 정부의 인권위반 상황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오디카르의 대표와 사무총장에게 2년 징역형을 부과했습니다.
UN과 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 국제앰네스티 등의 국제기구들은 하시나 정권에게 이같은 인권유린 행위를 중지하도록 반복적으로 경고했지만,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시나 정권의 공포정치와 신속대응부대(RAB)
방글라데시의 강제실종은 주로 신속대응부대(RAB, Rapid Action Battalion)라는 군사조직이 자행했습니다.
역설적인 사실은 RAB가 원래 하시나의 아와미리그(AL)가 야당이던 시절인 2004년 당시 총리 칼레다 지아가 이끄는 방글라데시 민족주의자 정당(BNP) 집권 하에서 조직되었다는 점입니다.
범죄와 테러에 신속하게 대응한다는 명분 아래 활동을 시작한 RAB의 요원들은 방글라데시 육해공군과 경찰, 국경수비대와 최대 준군사조직인 안사르(Ansar)에서 차출된 군인들로 충원됩니다.
이들은 명령받은 임무수행 중의 행위에 대해 면책특권을 부여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법외 살인과 강제실종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아와미 리그(AL)와 하시나 당수는 RAB가 “헌법조항과 인권법과 사법절차를 공공연하게 무시하는 조직”이라고 비판하면서 그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2009년 아와미 리그가 집권하고 하시나가 총리에 취임하면서 RAB는 해체되기는커녕 오히려 조직이 증설되고 활동이 강화됐습니다. 2005년 5,500명이던 BAT요원들이 2021년 15개 부대에 편성된 15,000명으로 증가했습니다.
미국과 영국의 RAB 지원과 제재
2010년 영국과 미국 정부가 방글라데시의 RAB의 훈련에 관련되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고, 따라서 서방 국가들도 방글라데시의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2021년 12월21일 <아틀란틱 협의회(Atlantic Council)>에 발표된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교 석좌교수 알리 리아스(Ali Riaz)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RAB 창설 직후인 2005년부터 이 단체가 사법외 살인과 강제실종에 관련된 것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2005년 6월5일 미국의 맥컬프 자문위원은 2004년 출범한 RAB의 초대 부대장 초두리 파즐룰 바리(Chowdhury Fazlul Bari) 중령으로부터 “크로스파이어(=사법외 살인을 가리킴)는 단기적인 필수 방편”이라는 발언을 듣고도 묵인했다고 한 것입니다.
리아스 교수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2009년에도 RAB에 인권 교육 훈련을 제공했고, 영국 정부도 2008-2011년 RAB에 “심문 기술”과 “교전 수칙” 훈련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미국과 영국 정부가 RAB의 수사와 심문이 인권을 침해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훈련을 제공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리아스 교수는 또 2009년 제임스 모리아티 미국대사가 RAB는 “방글라데시의 테러진압을 위한 최고의 수단”이라고 말하고서 “앞으로 RAB는 미국의 FBI와 같은 기관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던 사실도 지적했습니다.
방글라데시의 RAB가 효과적인 수사기관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RAB의 인권침해 활동을 묵인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미국 정부는 또 2019년 RAB 간부들을 미국으로 초청해이 “지역 기반 SNS 감시체계 소프트웨어” 사용법 교육을 받도록 했는데, 이는 하시나 정권의 RAB가 반정부 활동가나 야당 지도자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데에 활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과 영국 정부의 RAB 지원 사실이 마침내 양국 의회에 알려져 제재 요구가 제기됐습니다. 2020년 10명의 미국 상원의원들이 마이크 폼페이 국무장관과 스티븐 먼친 재무장관에게 방글라데시 RAB 간부들을 제재할 것을 요구했고, 영국 의회에서도 2021년 15명의 전,현직 RAB 간부들을 제재하라는 요구가 제출되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2021년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의 주범으로 지목된 RAB 간부들에 대해 입국금지조치를 내리는 등, 방글라데시 정부에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RAB의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의 건수는 현저하게 감소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을 자행한 방글라데시의 RAB를 지원해왔다는 사실에 대한 임시과도정부의 입장이 무엇인지, 이고은씨를 통해 무스타인 빌라 자히르씨에게 질문했으나, 이 글을 포스팅하는 시간까지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혁명의 수습과 방글라데시 내부 개혁에 집중하고 있는 유누스 과도정부로서는 아직 내정과 외교 문제를 동시에 정리하거나 책임을 물을 단계가 아닌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드러나는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
하시나 정권이 무너지고 임시과도정부에서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 피해조사를 시작하자,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강제실종 구금자보다 살해된 사람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강제실종의 목표가 구금이 아니라 살해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카에서 발행되는 벵갈어 신문 <보니크 바르타(Bonik Barta)>에 따르면, 하시나가 집권한 2009-2023년 사이에 677명이 강제실종으로 구금됐고, 구금 중 사망자 수가 1,048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같은 기간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부기관에 의해 살해된 방글라데시의 사법외 살인 희생자가 적어도 2,699명에 달한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유누스가 이끄는 임시과도정부는 2024년 8월29일 하시나 정권이 지속적으로 회피해 온 강제실종 국제협약에 가입했습니다.
그와함께 전직 판사와 고위직 공무원과 사회활동가로 구성된 강제실종 조사위원회를 발족, 하시나 정권 하에서 자행된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하시나 정권의 인권유린 사례가 확인되기 시작함에 따라 임시과도정부는 2024년 10월17일 전총리 셰이크 하시나와 44명의 전직 고위관료들에게, 이들이 민중 봉기 기간에 자행한 “학살과 살인, 반인권 범죄”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모스피쿠르 라흐만 조한씨의 피해자 기록
모스피쿠르씨는 이번 방한 기간 적어도 2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하시나 정권 하에서 자행된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의 피해자와 가족들의 실태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 피해자의 가족들을 취재해 온 모스피쿠르씨는 이번 한국 발표를 위해 85쪽에 달하는 피해자 관련 자료를 보내왔는데, 그 대부분은 강제실종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과 이들이 지내온 고통의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모스피쿠르씨가 전한 자료 중에는 강제실종 아카이브가 포함됩니다. 하시나 정권이 강제실종 자체를 부정하고 조사를 거부해온 가운데, 피해자 가족들은 강제실종된 부모,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에 대한 가능한 모든 기록을 보관해 왔는데, 이 기록들을 한데 모아 아카이브를 구성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강제실종과 관련된 신문기사와 사진, 영상과 CCTV기록, 가족들의 일기와 메모 등이 포함되어 있어, 향후 조사와 처벌, 피해보상 등을 위한 소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포정치를 극복한 몬순혁명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은 하시나 정권이 지속적으로 활용한 통치기법임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인권단체들이 지속적으로 이를 중지하도록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시나 정권은 이를 계속해 왔습니다.
이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납치하고 살해함으로써, 전국민을 공포로 몰아넣는 방법으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모스피쿠르씨의 발표는 방글라데시 국민들이 경험해 온 공포와 슬픔을 대변합니다.
무스타인 빌라 자히르씨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국제포럼 발표문이 몬순혁명의 경과와 결과를 요약한다면, 모스피쿠르씨의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의 기록은 몬순혁명의 배경을 잘 설명해 줍니다.
공포와 슬픔 속에 사반세기를 살았던 방글라데시의 시민들이 마침내 공포를 극복하고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으로 정권을 유지해온 하시나 정부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무스타인 빌라 자히르씨는 그의 포럼 발표문에서 “(순교자) 사예드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동영상이 sns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하시나가 만든 공포의 장막이 무너졌”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그는 또 “사예드가 당긴 불길이 무그도의 순교로 화산처럼 폭발했”고, 이것이 대중을 단결시켜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가능하게 했다”면서, 그것은 곧 “공포정치를 무너뜨리고 살인적인 몰록(Moloch)으로부터 나라의 영혼은 구하는 일”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모스피쿠르 라흐만 조한씨는 수십년 동안 방글라데시에 이같은 공포가 조성된 것은 강제실종과 사법외 살인에 의존한 하시나 정권의 통치 때문이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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