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는 19298월말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해 11월초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했고, 10여명의 제자들을 모집해 교육과 훈련을 시키면서 새로운 무용작품을 창작해 나갔다.

 

귀국 후 첫 공연은 1929125일 조선극장에서 열린 찬영회 주최의 <무용연극영화의밤>이었다. 경성 주요 일간지 연예부 기자들의 모임인 찬영회가 조직한 이 공연은 박승희의 토월회가 활동을 재개한 공연이기도 했다. 이 공연에서 최승희는 <인도인의 비애><금과은>, <세레나데> 등의 세 작품을 발표하면서 조선 무용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곧이어 최승희는 193021일 경성공회당에서 <1회 무용발표회>를 열고 11곡의 신작품을 발표했다. 9명의 제자들과 함께였다. 이 공연을 마치자마자 24-5일 개성의 고려청년회관 강당에서 첫 지방공연도 가졌다.

 

1929년 12월5-7일, 경성 <조선극장>에서 열린 <무용연극영화의밤> 공연. 이 공연이 무용유학에서 돌아온 최승희의 초무대였다.

 

그해 331일과 41일에는 단성사에서 두 번째 <창작무용공연회>를 열고 5곡의 신곡을 발표했고, 1021-22일에는 역시 단성사에서 세 번째 공연인 <2회 창작무용발표회>를 열고 16곡의 신곡을 발표했다. 1931110-12일에는 <최승희 제3회발표회>를 열고 또다시 16곡을 발표했는데, 이중 4곡이 신곡이었다.

 

그밖에도 1930411일에는 중앙유치원 주최의 <신춘자선음악무용회>, 614일의 <고학생을 위한 자선무용회>, 1114일의 <여자고학생을 위한 기금모금 동정무용회> 등의 3번의 자선무용공연을 가지기도 했다.

 

경성에서의 신작 발표회와 자선무용회 외에도 최승희는 지방공연도 활발하게 실시했다. 193024-5일의 개성 공연을 비롯해 부산(524-5), 대구(526-7), 평양(67-8)에서 공연했고, 계속해서 평양(622-23), 진남포(625), 사리원(627), 청주(912-13), 목포(119), 대전(1111), 해주(1117-18), 인천(1220), 재령(1121), 수원(1129), 부산(1931217) 등에서도 공연을 가졌다.

 

 

1930년 1월22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최승희 제1회발표회> 기사.

요약하면, 최승희는 귀국 후 약 1년 동안 4번의 정식 발표회를 통해 약 30곡의 신작품을 발표했고, 이 레퍼토리를 가지고 3회의 자선공연과 15회의 지방공연을 단행했던 것이다. 30곡의 신곡을 제목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인도인의 비애>, <금과은=황혼>, <세레나데>, 이상 1929년 신작; <금혼식의 무도>, <양기의 무용>, <희롱>, <사랑의춤>, <오리엔탈>, <애수의 여인>, <모던풍경>, <해방을 구하는 사람>, <영산무>, <마즈루카>, <적막한 왈츠>, 이상 21일 제1회발표회 신작; <, -->, <농촌소녀의 춤>, <밤이 밝기 전>, <운명을 탄식하는 사람>, <선녀의 춤>, 이상 331일의 창작무용공연회 발표신작; <그들은 태양을 찾는다>, <달밤에>, <장춘불로지곡>, <스패니쉬댄스>, <남양의정경: 토인의춤>, <남양의정경: 하와이소야곡>, <방랑인의 설움>, <정토의 무희>, <인도인의 연가>, <집시의 무리>, <가극파우스트: 고대무용>, <파우스트: 클레오파트라의 황금의잔>, <파우스트: 트로이처녀의춤>, <파우스트: 각여신의춤>, <이병정 못났다>, <이집트풍경>, 이상 1021일의 신작무용2회공연의 신작; <그들의로맨스>, <향토무용: 농촌소녀, 풍년이오면>, <광상곡>, <그들의행진>, 이상 1931110일의 최승희3회발표회 신작.”

 

최승희의 초기 대표작 <인도인의 비애(1929)>의 한장면

 

이 같이 활발한 공연활동을 통해 최승희는 불과 1년 만에 조선 사회의 가장 촉망받는 신진 무용가이자, 가장 인기 있는 예술가로 꼽히게 되었다. 최승희의 신작무용발표회에는 조선총독을 비롯한 경성 주재 외교관들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곤 했다.

 

최승희의 인기는 일본인과 조선인을 막론한 고관대작들로부터 가장 일선에서 근대화의 혜택을 누리던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 그리고 기생과 룸펜, 일반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광범위했다.

 

최승희가 1931221일 단행한 춘천 공연은 이러한 공연활동의 일환이었고, 이미 그 명성에 널리 알려진 최승희는 춘천에서도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jc, 2021/8/18초고; 2024/2/18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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