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26일,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가 제막됐다. 나는 제막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가고 싶기는 했으나, 코로나19의 국제 방역이 까다로워지면서 여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즈음 한일 양국 사이에 발생한 무역 분쟁의 후폭풍이 겹쳐서 자유로웠던 한국인의 일본 여행에도 비자가 필요해졌다. 서울의 일본대사관이 정한 방문비자 발급 조건이 엄격했기 때문에 당분간 일본 여행은 불가능해졌다.
그 때문에 <최승희 후속 조사>가 중단되었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미 1년 반 동안 수집해온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에 그것을 읽고 정리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오히려 쉬는 시간이 생긴 셈이어서 속도조절을 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무용신 프로젝트>에도 지장은 없었다. 정세화 선생께서 일본에서 모든 일을 잘 관장해 주셨기 때문이다. 고베와 시코쿠의 조선학교에 무용신이 전달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정세화 선생에게 ‘우리 학교에도 무용신이 전달되는가’ 하는 문의가 자주 들어온다고 하셨다.
이런 긍정적인 반응에 고무된 이인형 선생과 나는 <무용신 선물>을 확대하기로 했다. 맹렬해 지는 코로나19 때문에 2020년의 재일조선학생 예술경연대회가 3개 지역으로 나뉘어 진행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우선 깅키 지역의 조선학교에 <제2차 무용신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다만 <제1차 무용신>은 2개 학교의 초,중,고급학생들에게 모두 전달했지만, <제2차 무용신>은 중,고급학생들에게만 보내기로 했다. 초급학생들을 제외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단기간에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우리의 능력에도 제한이 있었다.
다시 한 번 정세화 선생의 도움으로 각 학교의 무용부 학생 수와 각 학생들의 신발 치수를 조사했다. 지역이 넓어지고 학교 수와 학생 수가 많아졌기 때문에 이 조사도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세화 선생은 무슨 수를 쓰셨는지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해 주셨다.
정세화 선생의 조사에 따르면 깅키 지역 6개 조선학교의 중,고급 무용부학생의 수는 160명이었다. 교원 분을 포함시킨다면 약 170켤레의 무용신을 준비하면 되었다. 필요한 예산은 약 430만원(=약 40만엔)으로 추산되었다. <제1차>때보다 5배가량 늘어난 셈이었다.
이인형 선생과 나는 2020년 6월과 9월에 두 번으로 나누어 모금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재일조선학교 후원에 대한 호응이 높아지고 참여가 늘어났기 때문에 모금운동은 어렵지 않았다.
<제2차 무용신>을 위한 첫 번째 모금을 마치고 잠시 쉬던 6월말경, 나는 다시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났다. <무쿠게통신(無窮花通信, 2020년 5월31일자, 통권300호)>에 실린 곤도 도미오(近藤富男)선생의 글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쿠게통신>은 <무쿠게회(むくげの会)>의 기관지이다. 최초의 최승희 평전인 다카시마 유사부로(高嶋雄三郎)의 <최승희>의 초판(1959)은 도쿄의 <학풍서원(學風書院)>에서 출판되었지만, 1981년에 개정판을 낼 때에는 <무쿠게사(むくげ舍)>가 출판했던 것을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1971년 1월에 결성된 <무쿠게회>의 홈페이지에는 “조선의 문화와 역사, 풍속과 언어를 연구하는 일본인들 중심의 동아리”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기관지 <무쿠게통신>이 벌써 300호가 발행되었다는 것은 놀라웠다.
웹사이트에는 잡지의 모든 글이 포스팅되지는 않았지만 곤도 도미오 선생의 기고문은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곤도 도미오 선생은 3월26일의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의 제막식을 마치신 후, 이 글을 <무쿠게통신>에 기고하신 것 같다. 이글에는 오랜 숙원을 이룬 사람의 조용한 자부심과 함께 명을 달리하신 선배에 대한 회상이 잔잔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글이 <다카라즈카 조선인 추도비>에 대한 나의 관심을 폭발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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