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국제영화제가 부산에서 열리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부산이 오래 전부터 극장과 영화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관의 역사와 그 수가 말해 준다.
부산지역에서는 1903년에 첫 극장이 개관한 이래, 대한제국 말과 일제강점기(1903-1945년)에 23개 영화관이 존재했다. 해방 후(1947-2014년)에도 단관극장이 78개소, 소극장(1982-1999년)이 48개소, 복합영화관(1993-2014년) 27개소가 개관과 폐관을 거듭하면서 부산 영화인들과 관객들에게 영화를 가까이 하게해 왔다. 여기서는 일제강점기의 주요 극장들에 대해서만 일별해 보기로 하자.
부산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극장은 행좌(幸座, 1903-1915, 사이와이자)였다. 1903년 12월(추정), 부산의 사업가 하자마 후사타로(迫間房太郞, 1860-1942)가 남빈정 2정목 14번지(=중구 남포동2가 45-1번지)에 개관한 행좌는 일본인들을 위한 연극장, 즉 가부키 극장이었다.
부산에서 두 번째로 개관한 극장은 송정좌(松井座마츠이자, 1903-1911)로, 행정 2정목(=중구 남포동, 또는 중구 광복동?)의 사안교(思案橋) 앞에 세워졌다. 부산의 여관업자 마츠이 고지로(松井幸次郎)가 설립한 이 극장은 연극장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행좌와 송정좌에 이어 부귀좌(富貴座후키자, 1905-1907)가 부평정(=중구 부평동)에서 문을 열었으나 1907년 8월1일 발행된 지도 <부산항시가 명세도>에 부귀좌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 전에 폐관된 것으로 보인다. 1906년 3월15일 발행된 <조선실업> 제10호가 “(행좌와 송정좌와 부귀좌의) 세 극장이 모두 비좁다”고 서술한 것을 보면 부산의 초기 3대극장은 규모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부산 최초의 대형극장은 부산좌(釜山座후산자, 1907-1923)이다. 부산의 일본인 거류민 1세대 실업가 오이케 타다스케(大池忠助)를 중심으로 야마모토 준이치(山本純一), 나까무라 토시마츠(中村俊松), 고지마 진기찌(五島甚吉)등이 공동 합자, 1907년 4월 자본금 총액 3만원, 불입자본금 2만원을 출자하여 부산연극합명회사를 창립 후 부산좌를 건축, 그해 7월15일 개관했다.
부산좌 건물은 끽다점과 정원을 설치하는 등 부대시설과 조경에도 신경을 쓴 근대식 건축물이었다. 내부 관람석은 의자가 아니라 방석을 깔고 앉는 구조였다. 관람석 수는 무대 정면에 990석, 좌우측이 각각 225석으로 총 1,540석으로 당시 조선과 만주를 통틀어 최대 규모였다. 연극 전용극장이었으나 연쇄극과 영화 상영도 계속되었고, 음악회, 무용발표회, 투견대회, 권투시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행사가 개최되었던 극장이었다. 특히 부산좌는 1915년 10월16일 <짝사랑>을 상영하면서 한국 최초의 연쇄극 상영극장으로 기록되었다.
1912년에는 4개의 극장이 추가로 개관했다. 변천좌(辨天座벤텐자1912-1916, 본정1정목, 중구 동광동1가 16번지), 동양좌(東洋座도요자, 1912?-1918?, 부평정1정목, 중구 부평동), 질자좌(蛭子座히루고자, 1912-1918, 목도牧島, 영도), 욱관(旭館아사히칸, 1912-1916, 행정1정목, 중구 창선동)이 그것이었다.
변천좌는 극장주 교야마 하나마루(京山花丸)가 1916년 활동사진 상설관인 상생관(相生館아이오이칸)으로 전환하기 위한 개축공사에 들어가면서 5년 만에 폐관되었다.
동양좌는 부산좌와 함께 드물게 회전무대까지 갖춘 연극 전용 극장이었으나 1916년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전환하면서 대흑좌(大黑座다이고쿠자)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8년 발행된 <부산시가전도> 이후의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대흑좌는 그 무렵 폐관된 것으로 보인다.
영도 지역에 처음 세워진 질자좌의 극장주나 폐관 이유 등이 밝혀져 있지 않으나, 아마도 일본인 거류지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흥행이 부진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욱관은 기석식(奇蓆式) 연극 공연장이었으나 활동사진 상영 시설을 확충하고 일본활동사진주식회사와 천연색활동사진주식회사와 영화공급 계약을 맺은 후 1914년 3월12일부터 연중무휴로 활동사진을 상영하기 시작했다. 욱관은 부산에서 활동사진 상영관 시대를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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