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래관(寶來館호라이칸, 1914-1973)은 1914년에 행정1정목 15번지(=중구 창선동1가 15번지, 현 국민은행 광복동점 자리)에 문을 열었다. 극장주 오노하이루(小野入)는 보래관을 연극전용 극장으로 개관해 일본 신극과 가부끼 등을 주로 상연하였다. 개관 당시의 입장료는 1등석 25전, 2등석 20전,3등석 10전이었다.
보래관은 개관 4개월만인 1915년 3월9일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재개관했다. 이는 욱관이 1914년 3월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전환한 것에 자극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즉, 보래관은 욱관에 이어 부산의 활동사진 상설관 2호로 기록된 셈이다.
1914년 12월19일에는 행관(幸館)이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전환함으로써 욱관, 보래관과 함께 부산의 초기 3대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꼽혔다. 1916년 1월11월에는 동양좌가 대흑좌로 이름을 바꾸면서 활동사진 상설관 4호가 되었고, 1916년 10월31일에는 변천좌가 헐린 자리에 상생관(1916-1945)이 활동사진 상설관 5호관으로 들어섰다. 욱관이 1916년, 대흑좌가 1918년에 폐관된 이후부터 보래관은 행관, 상생관과 함께 부산의 3대 활동사진 상설관으로 꼽혔다.
보래관은 부산에서 가장 먼저 연속활극 시리즈물을 선보인 극장이었다. 1916년 7월8일 길이가 124,000척으로 25편 50권짜리 대작 영화 <하트3!!>을 상영한 이래 바이타그라프사, 유니버셜사, 파테사, 워너사, 메트로사 등이 만든 미국의 연속활극이 대부분 상영되었다. 초기에는 동경천연색활동사진주식회사와 특약을 맺고 경성의 황금관과 동시에 활동사진을 개봉했고, 후에는 일본의 데이코쿠키네마주식회사와 닛카츠, 미국의 유니버셜영화사, 폭스사, 바이타그라프사, 워너사,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 그리고 프랑스, 독일 등의 유럽 영화까지 상영했다.
보래관은 행관에서 1929년 처음으로 발성영화를 상영한지 1년 후인 1930년 7월 26일 닛카츠(日活)의 제1회 작품인 <고향>을 상영하면서 발성영화 상영관 시대의 대중화를 열어 나갔다.
보래관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은 이바라키현 출신의 이와사키 다케지(岩崎武二)였다. 그는 도쿄의 영화사에서 근무하다가 1914년에 조선으로 건너왔고, 한동안 경성에서 일하다가 부산에 와서 보래관에서 지배인으로 오래 근무한 후, 경영을 승계했다.
1928년 보래관은 재건축되었다. 상층 250석, 하층 450석, 총 700석 수용의 2층 목조 건물로 재건축된 보래관은 같은 해에 행관, 상생관과 함께 키네마협회를 결성함으로써 경쟁을 줄이고 협력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키네마협회는 1930년 행관이 화재로 폐관된 후 행관의 뒤를 이은 소화관을 받아들여 부산활동사진상설관동업조합으로 바뀌었고, 1944년에는 부산영화극장이 가입해 부산영화연예조합을 개칭하면서 4개 극장 담합체제를 유지했다.
1937년 9월2일 당시 극장주 이와사키 다케지는 극장 노후화를 이유로 재신축을 결정, 상영 중인 영화 프로를 부산극장으로 이동해 상영해 가면서 1년 1개월 동안 건축비 30만원을 투입한 끝에 1938년 10월5일 새로운 보래관을 개관했다. 이는 140평 대지 위에 3층 석조건물(총 건평 341평)을 갖춘 현대식 극장으로 수용인원은 952석이었다.
보래관은 일제에 앞장서서 협조했던 대표적인 친일 극장 중의 하나였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협조하기 위해 영화광고(1941년 5월 25일자 부산일보)에서도 “국민 모두가 방첩 전사” 라는 구호를 싣는가 하면 “만주 사변 기념흥행”식의 표현으로 자국전쟁을 미화 홍보하는 상영광고를 서슴지 않았다.
보래관은 조선인이 제작한 조선영화를 철저하게 외면한 극장이었다. 개관한 전 기간 조선영화를 단 1편도 상영하지 않았으나, 1944년 제작된 친일 어용영화 <거경전>이 유일하게 개봉된 바 있었다.
8·15 광복 후에는 1946년 1월1일 <국제영화극장>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한때 미군 전용 극장으로 운영되다가 1949년 1월18일 <국립 극장>, 1950년 6월18일 <문화극장>으로 명칭을 바꾸었다가 1973년 8월 27일 폐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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